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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Jul 19. 2023

우리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스리랑카를 순례하다

남아시아의 작은 섬, 스리랑카라는 나라에 우연히 닿았고 이 년간 머물렀습니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없어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무려 두 번의 교회 전례주년을 이곳에서 보낸 것입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이지만 스리랑카는 인종, 언어 그리고 문화까지 우리와 참 많이 다릅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어색함속에 조금 더 가까이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신앙을 통해 다가섰습니다. 처음엔 호기심 어린 시선과 관심이었지만 그렇게 스리랑카 가톨릭이 걸어온 역사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그 길에 박힌 아픈 이름들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식민시대, 박해, 내전, 자연재해 그리고 테러


스리랑카는 무려 16세기부터 300여 년간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6세기 처음 포르투갈이 영향력을 넓혀가며 가톨릭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당시 동양의 사도라 불리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직접 복음을 전파함에 신자들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왕국은 교세 확장이 위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 대규모 박해를 감행했고 많은 신자들이 무명의 순교자로 묻혔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굴하지 않고 성모자상을 모시고 정글로 숨어들어 끝내 신앙의 빛을 꺼트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모진 박해로부터 산속으로 숨어 교우촌을 일구어 살던 조선의 수많은 신앙 공동체처럼요.  


기나긴 식민시대가 지나고 1949년 마침내 독립국가가 건설되지만 주 민족인 싱할리 민족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이에 맞선 무장세력인 타밀 반군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30년간 몸살처럼 이어진 민족갈등은 결국 내전으로 발전해 무려 2009년까지 26년간 최소 10만 명이 사망했고, 2만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올해로 휴전 70주년 동족상잔의 상처를 지닌 한국인으로 이 참혹한 비극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스리랑카 가톨릭 교회는 전쟁 속에도 교회를 찾는 모두를 품었습니다. 증오심만이 가득한 두 민족을 연결하고 보호하기 위해 전쟁의 포탄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난민을 돕다가 반군으로 오인돼 사실된 바스티안 신부님 그리고 구호물품을 옮기다 지뢰를 밟고 순교한 란티스 신부님은 한국전쟁에서 순교하신 성직자분들 만큼이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휴전협정이 이뤄지는 중에도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으로 스리랑카 전역이 거대한 쓰나미 피해를 입어 3만여 명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서쪽 긴 가톨릭 벨트를 걸쳐 해안가에 위치한 스리랑카의 교회는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신자들은 다시 일어나 교회를 재건합니다. 2019년 4월 부활절엔 미사시간 이슬람 극단주의세력에 의해 성당 세 곳이 폭파되고 구름처럼 몰려든 신자들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렇게 절망과 분노 속에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교회를 용기 내어 찾았습니다. 하지만 성전엔 놀랍게도 웃음소리와 상흔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을 가슴 깊이 기억하지만  다시 집을 고치고 환하게 웃는 미소는 마치 긴 절망의 엠마오의 길에서 다시 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제자들의 모습을 닮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의 여행길에는 이 아픈 역사와 찢긴 마음들이 알알이 녹아 있습니다. 두 번의 전례주년에 맞춰 대림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 연중시기에 맞춰 이야기를 꾸려 보았습니다. 출장길, 여행길 가리지 않고 언제나 제일 먼저 다가서고 신앙인의 마음으로 머물렀던 장소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당에 머무는 모든 시간들은 선물 같았습니다. 제 신앙의 얕은 지식을 너머 더 배워나가는 기회가 되었고 어쩐지 나에게는 거울처럼 닮아있는 한국 성당에서의 추억을 떠오르게 해 주었으니까요. 우리에게 멀고 낯선 국가이지만 스리랑카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성당처럼 친근히 다가갈 수 있도록 이 이야기가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자 이제 그럼 스리랑카 순례길, 함께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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