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동에서 Y님과 커피를 마셨다. 인경은 Y님을 이야기할 때 자유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옮기면 아마 Y 님일 거라고 말하곤 했다. 자유롭지 않은 내가 그런 Y님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약간 걱정스럽긴 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그이의 세상과 맞닿게 되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설렘을 준다. 산뜻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약속 장소에 다다랐을 때 Y님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온 얼굴로 해를 받으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해사한 미소를 짓는 Y님을 보고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피어커피에 가서 2층에 자리를 잡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그녀는 라떼를 마셨다. 그녀는 라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시럽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달콤하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의 라떼를 마셔보라고 권했다. 그녀의 라떼를 한 모금 얻어 마시고는 나도 커피가 참 깔끔하게 내려졌다며, 내 커피도 마셔보라고 권했다. 그녀는 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정말 고소하네요! 하고 방긋 웃었다.
Y님의 등 뒤편으로 난 창문에 보이는 단풍과 아직 물들지 않은 초록색 나뭇잎들을 보고, 커피를 홀짝 마시고.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지만 어색하지 않은 이와 온전히 즐기는 가을 오후였다. 오후 세시쯤이 되어 깊게 들어오는 빛에는 사람을 현실에서 둥실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내 무릎에 닿는 빛이 주는 온기를 느끼며, 한참 걷느라 살짝 데워졌던 등이 빠르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벗어두었던 재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행복 정말 별 거 없는 것 같아요. 아 행복하다.라고 혼잣말인 듯 Y님께 말을 건넸다.
둘 사이에 겹치는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좋아하는 인경에 대한 이야기,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한때 힘겨웠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Y님과 내가 비슷한 듯 다르다는 인경의 이야기가 이해됐다. 우리는 꽤 비슷하고, 꽤 달랐다.
그녀는 자유는 자기 이유의 줄임말이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은 후 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라는 것도, 이제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어른이었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자신의 자유를 책임지고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 또한 온전히 받아들이고 회복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그녀는 앳된 어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유를 정의했고 이를 몸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정의에 따른 자유를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유로운 그녀를 사랑하고, 선망하는 게 아닐까.
대화를 하면서 종종,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Y님에게 그렇듯이, 자유는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매 순간 자유로웠고, 나에게 자유는 목표였다는 것이다.
나는 자유롭지 않아서 자유를 갈망했다. 언젠가는 꼭 갖고 싶은 것이었다. 그녀에게 자유가 자기 이유였다면, 나에게 자유란 매 순간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였다. 하지만 나다운 것은 고정되지 않은 것이고 여유라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있는 것이어서 손에 넣으려고 하면 할수록 멀리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유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저는 잘 견디는 사람이에요.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올 때까지." 그녀의 말에 답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자유의 시작인 것이다. 나의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 영원히 자유는 없다.
어떤 단어의 개념은 문자적으로 단 하나 존재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삶에 들어왔을 때에 그것은 더 이상 같은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개개인이 정의하는 개념대로 바라고 목표하며 살아간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지만 도저히 가질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언제가 되어도 다다를 수 없겠다는 무력감이 든다면 나의 정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세운 정의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나의 세상, 내가 정의하는 나의 삶. 나의 방황의 시기에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내가 세워둔 정의들을 살펴보는 일이겠다. 그 첫 발걸음을 내디뎌본다.
오늘부로 나에게 자유란 '내가 기꺼이 책임질 선택'이다.
살아가다 보면 책임질 수 있는 일들의 크기가 커지고, 수도 늘어나겠지.
나는 그렇게 매 순간 자유로워 점점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다다르게 되는, 어느 순간 닿게 되는 자유가 아닌, 언제나 내안에 존재하는 선택지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