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님께 카톡이 왔다. 책의 어떤 구절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가장 젊은 날의 철학>이라는 책이었다. 몇 장을 찍어서 보내주셨는데,
"야스퍼스는 내 자유에 대한 확실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선택으로 나아가는 것을 '결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야스퍼스는 결단의 순간에도 불안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결단과 불안정성은 대치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조건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결단이 완전히 확실하다고 믿으면 독단이 되므로, 진정한 결단은 오히려 자신의 확신이 불안정하다는 의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중략) 결단은 결코 완결적인 사건이 아니며 오직 끝에 이르지 않는 과정으로서만 존재합니다."
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한 자리에 앉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자영님은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분이니 나의 상황을 금방 이해하셨을 거다. 내가 요즘 어떤 것을 고민하고 있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래서 나에게 이제는 결단을 할 때라고, 결단은 확신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안하기에, 그렇기에 결단임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책 추천을 시작으로 자영님과 잠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내가 왜 성취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결단을 망설이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 자영님께서 방황의 마지노선을 정해 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마음에 참 와닿았다. 자영님 자신은 불안함과 우울함으로 충분한 방황을 해보지 못했기에 후배들에게는 방황을 즐겨보라 말씀하신다고.
보통 무언가를 준비할 때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그동안은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에는 깨끗이 마음을 접으라고들 하는데, 방황의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그때까지는 신나게 방황을 해보라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말이 어찌나 개운하던지.
지난 시절이 후회될 때는 보통 무언가에 푹 빠져 진득하게 하지 못한 때다. 그것이 방황이거나 일탈이어도 그렇다. 진득하지 못한 방황이 후회됨은 '진득하지 못한' 방황 이어서다. 우리는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후회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후회가 들 때는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알 때다.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았을 때,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않았을 때,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 않았을 때, 최선을 다해 방황하지 않았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실패했을 때. 이도저도 아니게 그 시절을 보내어서 남는 후회는 두고두고 마음을 후벼 판다. 지금 이렇게 애매하게 불안해하며 애매하게 무언가를 하고 애매하게 늘어지는 시기를 나는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뭐라도 제대로 할걸. 그게 아니면 제대로 그 시기를 만끽하기라도 할걸. 하면서.
그래서 자영님의 말씀대로 방황의 마지노선을 정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결단을 내릴 용기가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하지 못하겠다면 지금 나의 할 일을 방황으로 정하겠다. 마지노선이 지나면 그때는 무엇이든 결정을 해야겠지. 방황의 기간 동안 무언가 쌓여 방향이 잡힌다면 그대로 결정하면 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는 고민이 길다 하여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야말로 결단을 하면 될 일이다.
무엇을 할지는 정했으니 남은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에게 경력, 돈 따위가 남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내가 단 하나 남기고 싶은 것은 나에 대한 이해다. 내 지난 삶을 들여다보고 정리하고 가다듬어서 스스로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내가 깨끗하게 소화할 수 있는 시간. 그것만큼은 반드시 남겨야겠다. 삶의 온갖 수식어구와 평가를 걷어내고 나를 담담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충분한 방황의 시간. 충분한 자기 이해의 시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치열하게 방황할 것임을 선언한다. 숱하게 내가 밉고 때때로 내가 좋았던 순간들을 헤쳐 그 모든 순간들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보겠다.
우선 나도 <가장 젊은 날의 철학>부터 읽어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