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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y 19. 2021

나는 되지만 너희는 안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우리 회사 A 부장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끝판왕이.  횡포를 늘어놓자면 밤을 꼴딱 새도 모자다. 당시 대부분 술자리의 안주거리는 그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넋두리였을 만큼 말이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자신에게 인색하면서 남한테는 너그럽다. 오죽하면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강조하는 부분이 '자신에게 인색하지 말아라' 이겠는가. 다만 그 말을 지나치게 준수해도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A 부장처럼. 


  그는 규율과 형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했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직원을 나무라곤 했다.

  예를 들어 근무 중 급한 일이 생겨 30분 정도만 일찍 들어가 봐도 되겠냐는 사원에게 근무시간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6시가 되고 나서야 퇴근을 하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처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3시간도 아니고 겨우 30분이었다. 그 정도라면 동료 간의 사소한 배려쯤으로 너그러이 베풀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더 나아가 규율이 없다면 규율을 몸소 만들고 그에 따르는 것이 회사원이 지녀야 할 기본자세라고 다. 로써 그가 만든 온갖 규율에 적응해가느라 우리는 점점 예민해졌고 인색해졌다.

  나는 그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아주 잘못된 오산이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부장은 자신이 만든 규을 다른 팀 지키도록 강요하는 편이었다. 제는 남들에게는 그리 융통성 없던 그가 본인에 관한 일이라면 굉장히 유연적인 사고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는 휴일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길 시 대응할 수 있도록 휴일 비상근무 대응인력표를 작성했다. 그 주에 휴일 비상근무 담당일 시에는 반드시 회사 콜을 받고, 핸드폰을 꺼놓는 불상사를 만들지 말라 신신당부하였다.

  사건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휴가철에 발생했다. 그 주의 비상근무 담당이던 K 대리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버리고부터였다. K 대리는 어차피 콜 대응이니 강릉에 가서도 꼬박꼬박 전화를 받겠다 했으나, 그만 그가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휴가가 끝난 뒤 새로 핸드폰을 장만한 그가 쥐 죽은 듯 등장했고 그는 부장에게 아침 내내 된통 당하였다. 막상 대신 콜 대응을 했던 B대리는 군말하지 않았지만 부장은 규율을 어긴 K 대리에게 심히 성이 난 모양이었다.


  화장실 갈 때에도 꼭 핸드폰을 쥐고 가겠다며 이를 갈던 K 대리가 드디어 한 소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부장이 담당 근무이던 휴일 날, 그는 회사에서 빗발치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끝에 가서는 전원을 꺼버렸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하였지만 그 날 부장을 아울렛에서 마주친 다른 직원에 의해 감싸주기는 일단락되었다. K 대리는 부장에게 휴일에 자신이 대신 콜 대응을 했다며 넋두리를 했고 부장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주는 것 아니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규율을 어긴 건 부장 역시 K 대리와 마찬가지였건만 그렇게 융통성 없던 그가 자신에게는 이리 유연 수 있는지 경외심이 들었다.


  부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황금휴가가 있던 달, 샌드위치데이가 꼈고 모두 그 주에 연차를 쓰고 싶어 눈치싸움 중에 있었다. 기나긴 눈치싸움 속 부장은 팀원끼리 배려하자며 이런 샌드위치데이에는 가급적 연차를 사용하지 말자고 새로운 규율을 엄포했다. 모두들 쉬고 싶은 것 아니겠냐며 서로 이해하자던 그를 묵묵히 따랐다.


  그리고 그 주, 그는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샌드위치데이 황금휴가를 독식해버린 것이다. 휴가를 갔다 와 푸근해진 인상으로 돌아온 그는 두 손 가득 맛있는 것을 사들고 출근했다. 제주도에 다녀왔다며 오메기떡을 돌리는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얼굴에는 반기가 서려있었다.


  자신이 만든 규율 이건만, 자신은 지키지 않고 남은 지키고 있는 위선적인 상황은 계속 일어났다. 잠자코 있다가 결국 폭발해버린 K 대리가 요목조목 부장에게 규율을 폐지하던 지 부장님도 지키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라 했고 부장은 단번에 오케이를 외쳤다. 이리 허무하게 승낙할지 몰랐던 K 대리는 멋쩍어했고 부장은 앞으로 규율을 잘 지킬 테니 모두들 더 노력해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K 대리의 수난시대는 시작됐다. 부장은 K 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의 출퇴근 시간, 자리를 비우는 시간, 점심시간 등을 기록했고 그마저도 모자라 메일이나 결재의 토씨 하나하나 간섭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규율을 벗어났을 시에는 크게 질책했다.


  거진 1달 가까이 계속되자 K 대리는 부장에게 넉다운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었다며 포기한 K 대리였지만 그 뒤에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던 이가 있었다.


  나는 정면승부를 하는 대신 사내 고충상담게시판에 불합리한 팀 문화를 익명 고발하였다. 부장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런 실태가 회사에 떠돌자 부장은  자연스레 '규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규율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면서, 나는 어겨도 되고 너희는 안 되는 건 대체 어디에서 온 법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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