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 Apr 12. 2022

퇴사, 그 이상과 현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지.



  서른 초반.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돌연 퇴사했다. 사실 '돌연'이라는 표현은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퇴사와 어울리는 부사였고 내게는 '이윽고'가 적합했다. 시니어들이 들으면 풋- 하고 웃음 짓겠지만 내게 '쉼'없는 8년 동안의 회사 생활은 마음에 많은 생채기를 입혔다.


  그동안 머릿속에 마음속에 무수히 되새기던 단어가 마침내 현실이 된 순간 나는 솔직히 말해서 생각만큼 기쁘지 않았다. 아니 기쁘지 못했다. 설상가상 쌉싸름하고 불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퇴사만 하면 길가에 피어난 잡풀도 당장 비를 뿌릴 것 같은 먹구름도 예쁘고 운치 있어 보일 것 같다고- 마침내 그때가 오면 세상 살 맛이 날 거라며 그렇게 설레발을 쳤는데 아온 메아리는 비극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고 퇴사를 질러버린 게 화근이라고 말했다. 굳이 나는 그 말에 핑계를 대가며 애써 반기를 들지 않았다. 그 말에 수긍을 해버린 탓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응당 선배들공통적으로 하는 조언이 있다.


    '나가더라도 갈 곳 구해놓고 관둬'


 '나 완전히 새됐어.' 같은 노래 가삿말의 주인공이 되기 십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새가 되어 붕 떠버린 나는 과거의 내 모습을 한 직장인들을 눈으로 좇는다. 다어린 시절 사회초년생처럼 사원증을 매고 커피를 수혈하는 그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괴로운지, 하루하루를 어떤 생각으로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음을 아주 잘 알기에.







  살은 내게로 돌아와 그 세계에서 버텨내지 못한 내게 과녁을 조준한다. 끝내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 없는 사고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돌이켜 보면 나는 무언가에 소속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학교든 회사든 기관이든 꼭 말뚝을 박아놓고 살았다. 그게 마음이 편했고 뒤처지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로 족쇄를 찬 주제에 입 밖으로 자유를 외치는 건 모순이었을까.


  애증 하던 족쇄를 풀고 스스로 낙동강에 버려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홀로 수영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배를 탄 선원은 될 수 있어도 혼자 헤엄을 쳐 수풀 밖을 나올 수 없는 사람. 바로 그게 나였다.


  저기 멀리 보이는 배는 상류로 나아가는데 나만 하류로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가파른 물살에 흠칫 놀라 저항을 시작하려 하니 팔다리가 제멋대로지만 움직였고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수준은 되었다.


  물론 모름지기 소중한 내 인생인데 이상만 생각하고 퇴사를 했을까. 당연히 플랜이 있었으니 이 엄동설한에 따뜻한 집을 제 발로 나왔을 터였다. 그런데 그 플랜을 시작하자니 꾸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가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질투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조금이나마 닿아갈 수 있었다.




돌아간다면,
족쇄를 풀기 전 내게 진솔히 물어보고 싶다.


미련일랑 정말 없는지.  
패닉도 견딜 수 있는 강렬한 목표가 있는지.
스스로가 자유를 진정 만끽할 수 사람인지.
혼자 바로 설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되지만 너희는 안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