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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Feb 18. 2019

<전세방 계약기>

-시시(詩詩)한이야기

어느 날 은행에 갔었네/ 애인과 나 손 꼭 잡고 통장을 만들었네/ 등뒤에서 유리문의 날개가 펄럭거리네/ 은행은 날아가지 않고 정주(定住)하고 있다네/ 애인과 나는 흐뭇하다네/ 꿈은 모양이 다양하다네/ 우리는 낄낄대며 담배를 나눠 갖네/ 은행의 예절은 금연(禁煙) 하나뿐이라네/ 어쩐지 세상에 대한 장난으로/ 사랑을 하는 것 같네 사랑 사랑 사랑/ 이라고 중얼대며 은행을 나서네/ 유리문의 날개에는 깃털이 없다네/ 문밖에서 불을 붙여주며/ 애인은 아직도 낄낄거리네/ 우리는 이제부터 미래에 속한다고/ 미래 속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애인이 나에게 가르쳐주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 아프네/ 금방 머리 위로 파산(破産)한 새가 날아갔네/ 후두두둑/ 깃털 같은 빗방울들이 떨어지네/ 어느 날 우리는 많은 돈을 갖겠네

-심보선 詩 , ‘어느날 은행에 갔었네’ 전문


그날 부동산을 나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계약 했어요.

=어휴, 애썼네 아들.


나는 힘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애썼다고 했다.    


 여러모로 대학교 앞을 떠나야했다. 졸업도 했고 일을 하고 있어서 교통이 조금 더 좋았으면 했다. 월세를 내 돈으로 내고 보니 40만원이 조금 못되는 돈도 다달이 부담이었다. 자발적으로 그리고 떠밀리듯 대출 낀 전세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딛었다.

  방을 알아보는 것은 두 차원에서 힘든 일이었다. 먼저 주말이 없어졌고, 다음으로 방을 알아볼 때 드는 박탈감이 숨통을 조여 왔다.

  월화수목금 일을 하고난 토일요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하지만 이사를 가려면 그 주말을 들여 서울 곳곳을 돌며 방을 봐야했는데, 그 주도 딱히 이렇다할 결실 없이 끝나버릴 때면 허무함이 쌓여 화가 났다. 내 주말을 이렇게 앗아가다니!

 지난해 12월 말부터 1월까지 주말은 내가 어떤 곳으로 이사를 갈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과 부담으로 가득 찼다. 마음이 심란한 상태로 다시 월화수목금요일을 정신없이 헤쳐 나와 다시 비슷한 패턴의 주말을 거듭하니 스트레스 수치도 자연 높아지는 듯 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집이었는데 집에 살려는 사람은 뭐 이렇게 버둥버둥 움직여야 하나, 부동산, ‘산(産)’의 ‘부동자세(不動姿勢)’가 원망스러웠다.

  부동산 중개사 아저씨의 말 위에서 1~2000 만원은 쉽게 오르내렸다. 이 아저씨가 정말로 부자여서 그 돈이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본인 일은 아니되 값을 부르는 일 만큼은 쉬워서 그러는 것인지 원래 영업의 세계란 그런 것인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다만 내가 정해놓은 마지노선 금액에서 당초 금액보다 2000만원 비싼 방을 보여줘 놓고 월에 몇 만원 정도의 이자만 더 내는 것이라고 설득을 시도하는 그가 야속했다.

  서울대입구역 쪽을 돌아보다가 월요일이 찾아오고, 또 사당역 쪽을 보다가 한주가 금방 갔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직방이며 다방에 나온 허위가 반인 매물들을 즐겨찾기로 등록하며 희망을 북돋우고 실망하기를 한 달 정도 지속한 끝에 1월이 끝나갈 무렵 서울 영등포구에 원룸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고 발품을 팔았다면 조금 더 좋은 집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여력이 없었다.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마다 반복되는 더 좋은 방에 대한 욕심과 그 욕심의 좌절, 얇은 통장의 한계에 대한 마주함, 빚지고 싶지 않다는 내적 압박 등등을 그만 감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무렵, 나는 지쳐서 나쁘지 않은 방을 계약 해버렸다.

  그날 고작 5%라고 하는 계약금은 내 통장에서 뭉텅 빠져나갔다. 나는 무섭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손에서 수백만원이 지나다닌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없어지는 돈도 아닌데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내 돈이지만 이렇게 큰 돈을 부모님 없이 내가 옮겨도 되는 것인지 생전 처음의 일을 겪어내면서 나는 담담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대출심사. 흡사 나체가 된 것처럼 고객님의 연봉은 얼마나 되나요, 대출금은 있으신지, 신용은 어떤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위축이 되고, 이 돈은 얼마나 벌면 갚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속으로 셈을 해보는 과정이었다. 스스로를 검증해야할 수많은 서류들을 내고 죽죽 서명을 한 뒤 대출승인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는 한숨을 돌렸다.

  막상 전세방을 구하고 나니 홀가분하고, 어른이 된 것 같아 어쩐지 흐뭇해서 언젠가 돈을 모아 어느 날엔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다만 막상 대출금을 다 갚기 전까지는 집을 빼지 못할 것이고 일을 그만두는 용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는 생각에 닥쳐서는 어른이라는 것도 퍽 녹록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쯤에 와서는 이제부터 미래에 속하게 되었구나 싶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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