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핵심은 자연스러움이다.
아래의 영상은 유튜브 심리콘텐츠 중 정우열(정신과의사) 원장님의 인터뷰이다.
이 영상을 시청 후 지금껏 사람과의 만남이 어색했던 이유를 찾게 되었다.
출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u_64Is6qLUs&t=628s
영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섬세한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좋은 해상도를 가지고 상대를 본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70년대 화질의 모니터라면 섬세한 사람들은 최신의 4K 화질로 상대를 관찰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대의 표정이나 감정등 보고 느끼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2. 섬세한 성격이 지금껏 예민하다는 부정적 뉘앙스로 불려 왔을 가능성이 높고, 본인도 자신의 성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을 수 있다.
3. 관계에서 초점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가있다. 섬세한 사람들의 센서는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 파악하기 바쁘다. 내 감정은 모르고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만 신경 쓴다.
4. 자신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다. 사람들과 돈독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매우 큰데 비해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기 때문에 괜히 다가갔다가 내 기대치만큼 나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으면 이 실망감, 좌절감이 너무 커서 무서워 다가가지 못하고 신경 안 쓰는 척하며 온 신경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
5. 그래서 애초에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를 자초하지만 혼자 있으면 상처는 안 받더라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혼자 지내는 게 굳어질수록 괴롭고 공허하고 자기비하 하게 된다.
6. 보통 많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인간관계가 나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은 자신만 알기 때문에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의외로 인간관계가 나쁘지 않다. 인간관계에 좌지우지되지 않으니까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거나 불편한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안되기 때문이다.
7. 인간관계는 논리적이지 않은 무의식적인 상호작용이다. 인간관계라는 건 제일 중요한 게 분위기이다. 뭔가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의 장단점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분위기 자체가 인간관계의 제일 중요한 거다.
8. 섬세한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높은 기대와 자신에 대한 기대로 자연스러움을 해치는 쪽으로 자꾸 악순환이 펼쳐진다.
이 밖에도 좋은 내용이 많지만, 이번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나의 경험을 얘기하려고 한다.
1. 관계를 맺는 패턴
위 영상에서 섬세하고,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은 사람은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싶지만, 기대치가 높아 좌절감과 실망감이 매우 크고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애초에 아웃사이더로 빠지게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면 상처는 입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허함을 느끼고 자기 비하하게 되는 패턴을 갖는다고 했다.
패턴이란 말은 오랫동안 반복되었다는 얘기다. 나의 성격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내가 관계를 맺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인지하고, 나의 패턴은 어떤 건지 살펴보자.
아싸가 되는 나의 패턴은 가정환경에서 부터 시작했다. 어릴 적 마음의 상처 때문에, 어머니에게 나도 형만큼 중요한 자식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착하게 행동했었다. 형은 뭘 시켜도 잘 안 하고, 게임만 하고, 말을 잘 안 들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아버지가 무서워도 다가가서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드렸고, 집안일을 자처하고, 어머니에게 도움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이렇게 하면 나도 어머니에게 형만큼 중요한 자식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자라면서 수 없이 부탁하고 애원했었다. 나도 형처럼 대해 달라고, 대우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형과 똑같이 사랑받고 있다는걸 느끼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번번이 거절당했고, 나는 절망하고 실망했다.
너무 슬펐다. 나는 계속 요구하고 거절당하고 절망했다. 같은일을 매번 겪으면서도 이 실망감과 슬픔은 커질 뿐 작아지지 않았다. 점점 커지기만 했다. 12살 때는 형은 낳은 자식이고,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야 라는 어머니의 농담에 크게 울음이 났다. 12살이나 되었는데 그런말이 가짜라는 건 당연히 알았다. 내가 서러웠던건 어머니 마음속에 나와 형의 처지를 표현한것같아서, 그게 너무나 서러웠었다.
그냥 그렇게 매일같이 나도 사랑해 주세요 하며 매달리던 어느 날, 나의 모습이 눈길도 안 주는 친구에게 놀아달라 매달리는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아닌데 나 혼자만 붙잡고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자 비참했다. 내 모습이 창피했고 부끄러웠다.
한번 자각한 거절감과 수치심은 점점 커져갔다. 더 이상 나는 나도 사랑해줘 말할 수 없었다. 나도 어머니와 형 사이로 들어가고 싶어,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말할 수 없었다. 기대감보다 거절에 대한 좌절감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 어머니와 형에게 나도 같은 무리에 넣어줘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소외감이 느껴지면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내가 혼자 있을 수 있게. 다행스럽게도 나는 소설이나 만화 같은 픽션을 좋아했고, 혼자 있을 때면 그것들을 읽으면서 잠시 공허감을 잊을 수 있었다. 내가 소외감과, 공허감을 견뎌내는 방법이었다.
이런 방식의 패턴은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계속되었다. 나는 사람들과 돈독하게 지내고 싶지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누군가 다가와 줘야 관계가 시작될 수 있었다. 혹여 다가갔다가 상대가 거절하면, 내가 가치 없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서 다가가지 못했다. 누가 다가와줘도 나는 경계했다. 혹시 내 진짜모습(나의 내면, 인간성)을 보고 떠나면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인게 들통날 거 같아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늘 사람을 사무적으로 대했다. 내 솔직한 모습은 거절당하지 않도록.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할 때의 태도를 확인하며 나의 가치를 확인했다.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서도 다가가거나, 교류하지 않고, 멀리서 그들은 의식만 하며 그렇게 지내왔다.
2. 관계는 무의식적인 상호작용이다.
위 영상에서 말하길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이다. 이 사람의 장점과 단점으로 분위기가 결정되는 게 아니고, 관계는 무의식적인 상호작용이다. 상대가 뭘 잘못해서 불편하게 아니라 쟤는 뭔가 좀 불편해 느끼는 거다. 그래서 의외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인간관계가 나쁘지 않다. 상대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찾아왔던 답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대할 때 어색하고 불편해한다고 내가 느껴왔기 때문이다. 나는 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인성의 문제인지, 태도의 문제인지, 기술의 문제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씩 나를 조정해 왔었다.
쉽게 시작했던 건 자기 계발서를 잃고 특정요소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너무 차분한가? 높은 텐션으로 올려도 보고, 상대를 잘 배려하지 못해서 그런가? 상대를 더 배려해 보고, 진실되지 못해서 그런가? 정말 좋은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대해 보기도 해 봤다. 화법에 대한 책도 읽고, 소통에 대한 태도도 바꾸면서 여러 방법을 써봤다. 노력의 결과로 나의 상황대처 능력은 상승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인데,
나는 계속 자연스러움을 해치는 쪽으로 준비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분위기라는 것은 결과일 것이다. 사람들이 만나서 같이 어울리면 그 케미에 따라 어떤 분위기가 결정되는 결과인데, 나는 내가 이 사람과 어떤 분위기를 만들 거야. 생각하고 그런 분위기로 유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당황했다. 상대가 말을 않고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 내 불안은 더 커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다른 사람한테는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뭘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이 분위기를 조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분위기는 더 이상해졌다.
또 하나는 화법이나 소통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으로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한 것이다. 관계가 자연스러워지려면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그 문제를 더하는 방식으로 풀어가려고 했다. 그때는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외향적인 가면을 쓰고 처음에 만나는 사람과도 잘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했다. 그랬더니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대화를 잘할 수 있게 되더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다. 거리감이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처음엔 어색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친해지고 편해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나는 처음에 만나도 1년을 만나도 똑같이 대하고 있었다. 어느 집단이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