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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발적아싸 Jun 07. 2023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마음속 블랙홀

이유 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 검색도 하고,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며 공부해 왔다. 이 글들은 내가 나의 문제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글로 써내 혹여 나와 같은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성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어느 순간 나를 압도하는 감정이 있었다. 이유 없는 불안감, 우울감 그리고 텅 빈 느낌. 생각해 보면 그 느낌들은 유기불안이었던 것 같다. 버려질 거 같은 느낌. 혼자 남게 될 거 같은 느낌. 이런 감정은 성인이 된 지금도 나를 위축시키고, 두렵게 만들었다.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걸까? 어린 시절 시점에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우리 가족은 4인 가족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나. 불행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이가 안 좋으셨다. 두 분은 종종 크게 다투셨고, 내 나이 6살쯤부터는 이혼 얘기도 나왔던 것 같다. 내게 상처가 된건 양육에 대한 부모님의 결정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왜인지 형보다는 나를 더 이뻐하셨고, 형은 어머니가 키우고 필자는 본인이 키우겠다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이 싫었다. 왜냐하면 당시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정말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지만 집에서는 우리 형제에게 늘 잔소리하거나, 큰 소리로 화내거나, 매를 드는 무섭기만 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와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집안일 하시는 걸 본 적도 없고, 우리를 존중해 주신 적도 없었다. 아버지에게 자식은 그냥 말 잘 들어야 하는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를 귀여워하는 건 느껴졌지만 아버지 말에 어떤 불만도 용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키울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데 엄마랑 형도 없이 아버지와 살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어머니는 아버지 말씀에 대답이 없으셨다. 나는 그게 서운했다. 왜 형은 데려가 키우려고 하면서 나는 데려가려고 하지 않는 걸까? 어떤 날은 어머니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혼 후에 형은 어머니가 나는 아버지가 키우게 될 거라고. 나는 어머니께 물어봤다. 엄마 나는 왜 엄마랑 살면 안 돼? 어머니는 자식 둘을 엄마 혼자서 키울 능력이 없어.... 대답해 주셨다. 나 맛있는 거 안 먹어도 괜찮아, 다른 건 다 괜찮아 엄마랑 살고 싶어.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결국 이혼하지 못하셨다. 그러다 7살 때 형이 이모댁에서 하루 자면서 집을 비운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크게 싸우셨고, 어머니는 늦은 밤 갑작기 우리형제방으로 들어와 자고 있는 나를 깨우고는 공격하겠다 하셨다. 그날 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아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그 어디에도 따듯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나를 끝내 공격하지 못했다. 이내 아버지가 따라오셨고, 나는 그 무서운 아버지가 화를 내며 오는대도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앞을 막았다. 나는 너무 놀랐고 무서웠다. 아버지가 엄마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것 같아서. 나는 울면서 엄마 때리지 말라고 소리쳤고 울었다. 아버지는 내가 너무 놀라자 나를 달래려고 하셨지만 나는 쉽사리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날부터 내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혼자 남아있던게 내가 아니고 형이었다면 어머니가 그런 표정을 보였을까? 형이었다면 어머니가 공격하려고 하셨을까? 내 마음속 결론은 아니었다. 


내 마음속 유기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전과 달리 이혼하시면 어머니가 형만 데리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주 강해졌다. 나는 그게 몹시도 두려웠다.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 않겠지만 아이를 돌볼 줄 모르시는 분이었고, 자식을 윽박지르기와 매로 다스릴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정서를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나에게 가족 구성원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 사실 아버지만 무섭고 형과 어머니는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마음속 구분은 아버지, (형, 나, 어머니)였는데 이 사건 이후로 (아버지), (나), (형과 어머니)가 되어 버렸다. 어머니가 내 옆을 계속 지켜줄 거란 믿음이 깨졌다. 


나는 다시 형과 어머니 사이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께 형만큼 소중한 자식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형과 나에거 허용된 선은 분명하게 달랐다. 다른점은 아버지를 누가 책임지느냐였다. 

아버지께서는 사회에 대해 불만이 많으셨는데 그걸 얘기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와 형을 앉혀놓고 얘기하곤 하셨다. 나는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사회가 얼마나 험한지, 사회, 정치, 인간관계, 사기 치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 등등 그냥 아버지 머릿속에 있는 모든 얘기를 들었다. 대부분 격한 화와, 부정적인 얘기였고 우리는 듣기 힘들었진만 귀담아 들어야 했다. 잘 듣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화를 받아주는걸 형은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형은 아버지 말씀을 피할 수 있게 방으로 보냈다. 아버지가 오시면 형은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 혼자 남아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주었다. 나 역시 매일 아버지의 분노를 받아주는 게 힘들었다. 나도 어머니께 힘들다고 말씀드려 봤지만 그때 내게 돌아온 건 분명한 경계선이었다. 아버지의 분노를 받아주는 건 온전한 내 책임이라는 어머니의 경고였다. 말은 안 하셨지만 그렇지 않고는 엄마와 형은 같이 살 수 없다는 뉘앙스가 함축되어 있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최선을 다해서 들었다. 혹여 아버지의 풀지 못한 분노가 어머니와의 다툼이 되지 않도록, 그게 나와 어머니의 결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의 얘기를 들어드렸다. 


하지만 늘 서운했다. 어머니에게 형과 나는 다른 자식인 게 너무 서운했다. 왜 형은 중요하고 나는 그렇지 않은지. 형에게는 심부름이나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맞벌이하는 어머니를 도와 빨래나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됐고, 형이 게임에 빠져 밥을 안 먹으면 왜 너만 먹고 형은 먹이지 않았냐며 욕을 먹었다. 이해가 안 됐다. 형보다 두 살 더 어린 내가 일방적으로 자식의 모든 의무를 짊어진 것이. 그리고 나에겐 그것에 대한 불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 나는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인 건지... 어머니는 항상 너희 둘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시면서 왜 행동은 그렇지 않은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왜 항상 불안했는지. 나를 채우고 있던 것은 불안함이었다는 걸.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었다. 관계를 맺으면 상대가 원하는 걸 줘야만 관계가 유지된다고 인식했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거나, 상대가 필요로 하는 무엇이 내게 있어야만 관계가 지속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냥 있으면 나는 나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 내 자아에 붙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가치 있게 느낄만한 근거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의 기대는 더 커지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불안감은 더 커지고 점점 더 큰사람, 대단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쫓기고 있었다. 쉬면서도 무엇인가로 나를 키워야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평생 동안 느끼던 조급함의 속마음은 이런 감정이었다.


나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는 이 기분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조금 기분이 안 좋네, 불안하다. 공허하다.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오랫동안 나를 들여 다 보니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나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도 모두가 이해가 된다. 아버지는 삶이 괴롭고 힘드셨던 거고, 어머니는 형과 나를 둘 다 지키려면 내 도움이 필요했으니 형과 나를 둘 다 똑같이 사랑했다는 말이 진심이었던 거고, 형은 지금 내가 마음 아파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마음이 많이 아팠던 거였다. 지금은 이해가 된다. 


다만 오랫동안 강하게 느껴왔던 소외감과 불안감은 습관이 되어버려 지금도 어느 순간 나를 압도한다. 지금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는 나의 무의식 속 신념은 사람을 대할 때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PS-     우리 형제가 성인이 된 후에 부모님은 이혼하셔서 각자의 인생을 더 잘 보내고 계신다. 

         나를 인정받기에,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로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들은 

         다음 편에  쓰도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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