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순심 Sep 16. 2021

기다려주는 시간

‘월평빌라’라는 시설에서 사례집을 내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장애인 시설’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시설의 이념이 잘 드러난 이름이다. 그 이념에 따라 이곳에 생활하는 장애인은 시설에 속한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곳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주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 다니는 장애인이 소풍을 갈 때 학교 측에서 도우미를 요청하여도 거절한다. 그 이유는 ‘다른 학생의 부모님도 소풍을 따라가지 않으면 장애인도 동일하게 따라가지 않는 것이 맞다.’라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사례집을 읽고 난 후 나는 ‘이곳에 사는 장애인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들을 빼앗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례집을 읽은 후 즉시 실행으로 옮긴 것이 있다. 그 당시 학교 다니는 장애인들이 시설 차량이 아니라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훈련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이것을 시도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우려했고 안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컸다. 나의 마음속에는 ‘월평빌라에 사는 장애인이 가능하다면 우리 시설에 있는 장애인도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본원에 거주하는 장애인 스스로가 버스를 타고 하교하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사회복지사와 지역주민의 인내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길을 익히고 버스를 어디서 타며 내리는 훈련을 사회복지사와 함께 동행하였다. 그다음 해는 시설 차량으로 장애인들 뒤따라 갔다. 마지막 해는 뒤따라가 가는 역할을 지역주민이 해 주셨다.     


 초반에 물을 무서워하는 장애인 한 분이 계셨다. 물에 대한 공포증으로 다리를 건너지 못하였다. 처음에 교육할 때 한 명이 뒤처지면 무조건 기다리는 것으로 약속했기에 나머지 장애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첫 난간에 부딪혔을 때 몇 주간 애를 먹었다. 한 사회복지사의 기지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우리가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서가고 나머지 장애인도 앞서가니 물을 무서워하는 장애인도 ‘홀로 남았다는 위기의식’으로 얼떨결에 건너왔다. 그것으로 간단하게 극복되었다.     


 하교를 하면서 장애인들은 길을 가다가 목이 마르면 가게에 들어가 물을 달라고 말하기도 하며 화장실이 급하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카페를 들어가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그러한 행동이 돌발행동인 줄 알고 오해하였다. 자신들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르쳐주지 않은 부분까지 그들은 처리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주민들은 기꺼이 화장실을 내어주셨고 목이 마르면 물을 주셨다. 버스를 타고 오다가 장애인들이 차 안에서 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한 경우 운전기사가 직접 깨어서 내리게 하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며 시설 주변에 사는 이웃 학생이 깨워서 함께 내렸다. 지금은 순회교육으로 등하교를 하지 않지만, 그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장애인들은 스스럼없이 손 내밀고 도와주는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이 진정한 사회통합이다.       


우리는 시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들을 과보호하였으며 믿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기회 불평등으로 그들 속에 감춰져 있는 능력을 선보일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할 때는 비장애인보다 성장의 속도가 더디거나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더딘 성장에 사회복지사는 때로는 소진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복지사는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갖추어야 할 덕목 두 가지가 있다. 장애인들을 향한 ‘관심’과 기다려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어릴 적부터 시설에서 생활한 장애인은 일반가정에 있는 아이들보다 성장의 속도가 더디다. 한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일대일로 수 천 번씩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반복적으로 말을 배운다. 시설에서는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여러 명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일대일로 꾸준하게 반복적으로 배울 수 있는 여건과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9명의 장애인들이 스스로 버스 타고 다니기까지는 사회복지사와 지역주민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기다려주는 인내와 장애인은 자신의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립은 장애인 혼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이 믿고 기다려 줄 때만이 그들 안에 능력을 펼치고 실현 가능한 일이 된다.     


이미지 출처:신과 함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작가의 이전글 빨대로 풀린 오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