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책을 다 읽은 후 한쪽 이야기만을 가지고 쓴 내용이라 화가 났다. 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장애인, 노숙자, 세월로 유가족, 동물 등 사회에서 약자거나 소외받는 이들의 이야기다. 나는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그들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라 말하지 않겠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 ‘장애인 시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장애인 시설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다룬 것에 화가 난다. 그럼, 시설 밖에서 살고자 도와준 시설 밖 소위 말하는 장애 활동가와 인권활동가, 그리고 작가에게 묻겠다. 책 내용 중 시설에서 나가 사는 자립한 장애인 한 분이 불이 나서 목숨을 잃게 된 사례가 나온다. 국가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그들을 데리고 나간 장애인 활동가들에게도 책임도 있다. 장애인을 사회로 데리고 나가고자 했다면 그들에 대한 안전도 지원했어야 한다. 나는 장애인들이 무조건 시설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밖에 나가서 살고 싶다면 퇴소가 맞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과 장애인 활동가는 국가를 상대로 장애인에게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를 연계 및 지원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재가 장애인의 목숨을 잃은 것을 순전히 국가 책임만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 ‘국가가 서비스 지원을 단축되었다는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 자식이라면 그냥 두겠는가?’ 대책이 필요했었다.
우리 시설에도 3명이 자립을 원해 퇴소했다. 한 분은 아파트에 살며 취직도 하고 잘 살고 계신다. 그를 보면 장가보낸 엄마처럼 뿌듯하다. 한 분은 집으로 돌아가서 사신다. 위생관리가 안되고 비를 맞고 거리를 다니지만 당사자가 행복하다고 하니 실패한 자립은 아니다. 마지막 케이스는 보치아 선수인 그를 외부인이 독립을 추천하여 자립했다. 매달을 따고 받은 연금과 저축해놓은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고 돌려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생활이 여의치 않게 되자 그가 재입소를 원했다. 그 당시 시설 정원이 차 있어 재입소를 하지 못했다. 몇 년 후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분은 연고가 없어 명절에는 시설에 와서 주무시고 가셨다. 이것으로 보면 그에게 시설이라는 곳이 나쁜 추억을 가지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보람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시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까 걱정된다. ‘인권강화’로 이제는 책에 나오는 시설처럼 장애인을 대할 수 없다. 극히 일부 시설의 사례로 모든 시설이 그런 것처럼 이야기를 학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설에서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사는 사회복지사로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운 빠진다. TV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발달장애인을 때리고 방치한 채 잠자는 사람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이 잘못된 거지 재가 장애인을 지원하는 모든 단체가 인권적으로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설 밖 사람들도 우리를 다 사 잡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권침해로 자신이 불명예스럽게 사직해야 하는 상황에 누가 강압적으로 제지할 수 있을까? 자신의 밥줄이 끊기는 마당에 그러기는 쉽지 않다.
나는 바란다. ‘장애인은 무조건 시설 밖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시설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 나가서 살고 시설에서 살고 싶으면 안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대신 장애인이 어디서 살든 안전하고, 생활함에 있어 ‘장애’로 인해 제약받는 구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및 인권활동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과 나는 ‘장애인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목적은 같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람이다. 단지 포지션만 다를 뿐이다. 그 마음을 가지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활동가로서 선한 사례들도 많다. 현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활동가가 보기에 이 글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 그렇다면 용서를 바란다.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사람의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