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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Feb 11. 2024

상실에 대해 쓰기

애쓰는밤 240201

상실이라, 내 인생에 잃어버린 무언가라고 한다면 역시 엄마의 죽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늘은 엄마가 죽은 날로부터 1633일째 되는 날이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사랑한다 생각해 본 적 없던,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기만을 라고 바랐던 이와의 영원한 이별. 이 상실은 내 삶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술 취한 엄마를 찾아 밤거리를 헤맬 필요도, 정신병원 강제 입원 동의서에 사인을 할 필요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엄마의 간 대신 내 것을 내어줘야 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가 마지막 숨을 내뱉은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마냥 평화로울 줄 알았다. 가볍고 산뜻할 줄 알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불행이 사라졌으니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죽음 이후 한동안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에 뭉개진 채 지냈다. 첫 일주일은 어두운 방 안에 가만히 앉아 TV를 보면서 장례식장을 찾아준 지인들에게 어떤 말로 나의 괜찮음을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고, 그다음 일주일 동안은 죽음의 행정처리를 위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연일 사람들을 만나 괜찮은 척을 하는 척을 했고,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고, 『슬픔의 위안』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었다. 그리고는 어느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모두 상실의 모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의 어느 밤, 술에 취한 아빠는 전화기 너머 진심을 전해왔다. "너도 힘들지? 너 그래서 거기 간 거잖아."라고. 죽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듯했던 가, 그 여자와는 이혼한 지 30년도 더 지난 남자가, 너도 힘들지라고 말했다. 아빠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전화를 끊고 끝끝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별의 움직임 소리뿐이었던 남양주의 작은 다락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상실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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