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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kie Run Jun 13. 2019

20대의 세 번째 퇴사

나도 '요즘 애들'이었을까?

세 번 퇴사한 20대에 대한 간략한 배경.

나는 해외에 10년 이상 유학을 다녀온 20대다.

대학교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왔으며, 그간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 경력 3년, 퇴사 경력도 3번을 찍었다.


나는 '요즘 애들'인가?

'요즘 애들'은 성장과 워라밸을 중요시하고, 로열티와 끈기가 없다고들 한다.


O: 나는 '성장을 중요시하는 요즘 애들'이다.

더 이상 '평생직장'이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직장 및 직장의 브랜드 밸류에 의존하기보다는 꾸준히 실력을 키우고 성장해 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하기에 성장을 중요시한다.


X: 나는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요즘 애들'이 아니다. 

성장을 중요시하는 만큼 일을 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면 야근과 주말 출근 모두 괜찮았다. 실제로 여태껏 다녔던 세 회사 모두 워라밸이 없었다. 비록 원하던 방향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야근이 아닌 경우가 더 많았으나, 그간 워라밸은 작게나마도 퇴사의 원인이 된 적이 없다.


X: 나는 '끈기 없는 요즘 애들'은 아닐 것 같다.

요즘 애들은 끈기 없고, 뭐라고 조금만 꾸짖어도 퇴사하려 한다는데 나는 설령 내가 작성한 자료를 윗분이 쌍욕 하며 찢는다 해도, 내가 일을 못 한 거라면 더 잘 해내 꼭 인정받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로열티?: 로열티는 상호적인 것이다.

연인이든 회사와의 관계든 처음부터 관계를 끊을 생각으로 시작하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상호적이라는 건 아래 내용을 통해서도 보일 테다.


어쩌다 20대에 벌써 세 번 퇴사했나? 

퇴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1) 자발적 퇴사, 2) 비자발적 퇴사

첫 번째 회사는 비자발적, 두 번째는 반반, 세 번째는 자발적 퇴사였다.


첫 회사에서는 입사한 지 1년 반 만에 해고되었다.

어느 하루, 너희 팀 모두 회사에서 나가라는 말 들어보았나?


대학교 졸업 후 약 2년 만에 드디어 정규직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경력을 1년 반 채워가고 있었을 때였다. 내가 입사한 해에 유독 프로젝트가 많이 들어와 평소 퇴근 시간은 저녁 10시를 거뜬히 넘겼으며, 악명이 높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을 때는 아침 8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6-7시까지 밤새서 일하고, 별다른 휴식시간이라 할 것도 없이 아침 8시에 또다시 일을 시작해 저녁까지 야근을 이어 한적도 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평일이든 주말이든 항상 자리에 있어 '회사 가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 여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던 팀이었는데 어느 하루, 글로벌에서 한국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으니 너희 팀 모두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더라. 왜 그러한 결정이 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었고, 그저 글로벌에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게 공식 입장의 전부였다.


평생직장이란 없다지만 신입사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회사가 한국에서 더 이상 사업을 안 하겠다는데, 팀을 해체한다는데, 그러니 나가라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갈 수밖에.


두 번째 회사에는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동종업계에는 네 개의 외국계 회사가 있는데, 마침 그중 한 곳에 자리가 났다.


근로형태는 계약직. 연봉은 깎였다.

육아휴직 중인 직원을 1년 대체하는 자리였다.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높아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보장은 못해도 걱정 말라하더라.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은 아니었으나 일을 끊김 없이 하고 싶었기에 갔다.


팀은 총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팀장 한 명, 팀원 네 명.

비슷한 나이, 동일한 직급,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팀원 세 명이 있는 곳에서 나는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교육/복리후생 혜택에서 제외될 때는 아무리 작은 거라도 괜히 소외감과 씁쓸함을 느꼈다. 일하면서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에도 놓여봤고, 때로는 참을성의 한계를 시험받듯 이치에 어긋나는 요구도 받았다. 갈수록 하루하루가 고역스러워 언젠가부터는 집에 달력을 갖다 놓고 날짜를 하루씩 지워가며 버텼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일 년을 채웠다.


육아휴직 갔던 분이 회사에 복귀했다.

"둘이 같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싱가포르, 홍콩에 자리가 있을 것 같은데 관심 있냐고 제의받았다. 해외에서 근무할 의향도 있었고, 그간 업무가 잘 맞다고 느껴졌기에 고려해 볼 만했다. 다만, 해외에 간다고 해도 한국에서 소속되어 있던 팀과 어떻게든 계속 엮일 일이 보였는데 해당 인원들과 긍정적인 경험이 없었다 보니 제의가 내키지 않았다. 때마침 세 번째로 가게 될 회사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던 참이기도 해서 추진하지 않았다.


세 번째 회사에는 오래 다닐 줄 알았는데, 두 달 만에 퇴사했다.

세 번째 회사는 동종업계 네 개의 외국계 회사 중 세 번째 회사였다.


한국에서 기존 팀 멤버들이 다 퇴사해 새로 채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가기로 결정을 내리기 전 고민을 많이 했고, 주변에 많이 물어보기도 했다: 그 회사의 조직문화가 어떤지, 아무리 이직률이 높은 업계라고 하더라도 왜 사람들이 대거로 퇴사했는지. 동종업계 다른 회사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이래저래 흐르는 편인데 유독 이 회사만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회사의 한 가지 특이점은 매트릭스 조직이라는 것. 한국 내에서 연관된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저마다의 세부 직무에 따라 매니저가 달랐다. 내 직속 매니저는 싱가포르에 있었고, 프로젝트 매니저는 한국에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해외 사람들과 협력해서 일해야 하는, 밤낮이 없는 힘든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몇 주간 늦은 새벽과 주말까지 여러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불가능을 최대한 가능하게 만들어 냈다. 여럿과 함께 "그래, 잘해보자!"라는 마인드로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고, 이런 사람들과 일한다면 회사에 오래 다녀도 괜찮겠다 싶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프로젝트에 개입되었던 글로벌 레벨의 높은 사람이 내게 Appreciation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여러 윗사람들과 내 싱가포르 매니저(의 매니저)까지 CC에 포함해서. 글로벌 회사의 꽤나 윗사람이 여러 리더들을 끼고 일개 대리-과장급 정도의 직원을 공개적으로 칭찬을 한 거다. 설렜다. 회사와의 미래가 기대되었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의 경험은 매우 달랐고, 그게 결국 입사 두 달 만에 퇴사한 요인이 되었다.

국내 팀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영업을 주로 담당했는데, 본인이 담당하는 프로젝트 팀이 소수 인원 및 저직급으로 구성될 수록 본인이 가져가는 인센티브가 더 높아지는 보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 팀은 두 명 정도의 사원-과장급 사이의 직원으로 구성되었고, 부장급 이상은 일주일 중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씩 투입되어 프로젝트 방향성에 대한 조언을 준다든지, 내용을 검토한다든지, 클라이언트 대상으로 발표를 하는 등의 형태로 참여했다. 하지만 국내 팀 프로젝트 매니저는 부장급 이상에게 프로젝트 비용의 일부를 떼어줄수록 본인이 가져가는 금액이 줄어든다는 점이 아까웠는지, 그간 국내 또는 해외 팀의 부장급 이상의 서포트를 받아 업무를 진행했던 부분들을 최소한으로 줄였고, 급기야 본인이 그 업무를 직접 하겠다며 프로젝트에 무리하게 개입해 진행하다가 클라이언트에게 '실망스럽다'는 피드백을 받아냈다.


이해가 다르면 타협점을 찾아 같이 잘 되는 방법을 찾으면 될 텐데, 본인의 개인적인 욕구를 추구하기 위해 타협 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팀원들 간 이간질을 시키고, 본인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팀원을 타깃으로 삼아 괴롭혔다. 그중 나도 타깃이 되었다. 지나가다 한 두 번 싸대기를 때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속적인 업무적 및 인격적 폭력이 이어졌다. 매 시간 단위로 이유 없이 불려 다니고, 꼬투리 잡히고, 괴롭힘 당했다. 본인의 전화를 한 번이라도 놓칠 새라면 두고두고 괴롭혔다. 이른 아침이든, 저녁이든, 주말이든. 상시 대기조가 되어야 했다. 싱가포르 매니저와 1:1 화상미팅 중인걸 알면서도 30분-1시간을 못 참고 전화를 그렇게 연이어하더라. 중요하거나 긴급한 내용이 아님에도. 미팅 중이라고 해도 본인이 알 바가 아니었다. 전화를 바로 안 받으면 또 시작되는 온갖 비꼬음과 괴롭힘. 이러한 시간들이,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던 와중, 어느 하루 갑자기 모든 사고의 회로가 막히는 듯한 패닉 상태에 빠져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분명 의도적 괴롭힘인데 이를 막아낼 방법을 모르겠더라. 버티고 버티다 결국 더 이상 그 어떤 일도 못 하겠는 수준에 다다랐다.


그리고 입사 전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유일하게 들었던 카더라 중 회사가 윤리를 중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건 국내에 있는 상급자가 윤리를 안 지킨다면 그만이었다. 국내에 있던 팀장은 오히려 본인이 나서서 업무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클라이언트에게 먼저 제안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내 대표는 그 팀장에게서 무슨 매력을 찾았는지는 모르겠다만 회사에 영입하기 위해 찾아가 저녁을 사주며 설득하고, 연봉을 꽤나 올려주며 '스카우트' 해왔다고 하더라. 국내 대표는 본인이 그 팀장을 데려오는 데 쏟은 노력이 있고,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고 싶어서였는지 다른 팀원들과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에는 눈과 귀를 닫았다. 그 팀장이 핵심 인재며, 다른 팀원들은 '뭘 모르는 요즘 애들' 취급하며 팀장과 합세해 같이 깎아내렸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해결책이 안 보였다. 당장 옆에서 때리고 있는데 멀리서 그러지 말라고 말만 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우유부단하고, 겁 많고, 여태껏 나 자신을 제대로 보호해 본 적이 없었는데, 벼랑 끝에 다다랐다고 느꼈을 때 웬일로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나를 지키기 위한 결정을 별다른 대책 없이 내렸다.


퇴사했다.


어떤 이들은 평생에 걸쳐 세 번 퇴사할까 말까 하는데, 이렇게 나는 20대에 세 번 퇴사했다. 이력서 상으로는 '한국 기업문화에 적응 못하는 해외파,' '끈기 없는 요즘 애들'로 보일 테다. 나는 분명 '요즘 애들'이 맞고, 분명 '요즘 애들'과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심플한 이력서 상으로는 부정적인 의미의 '요즘 애들'이 되어버렸다.


세 번째 회사에서 퇴사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퇴사 후 육체적 및 정신적으로 휴식이 필요했다. 여태껏 일하느라 못 잤던 잠은 허리가 아플 때까지 잤다. 어떤 날은 그간 읽고 싶어 했던 책을 읽고, 어떤 날은 가만히 앉아 멍 때리고, 어떤 날은 밖에 나가 산책하고, 어떤 날은 사람을 만난다. 당분간은 급하게 일을 구하려 하기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내 앞날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나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더 강하고, 단단하고, 알찬 사람으로 성장하려 한다.


나의 이러한 경험들이 훗날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그의 앞날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길 바라본다.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 Philippians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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