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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Sep 26. 2019

03. 나의 낡은 동네

어릴 때부터 줄곧 살아오던 

나의 오랜 동네에 고급 아파트가 생겼다.


서로 놀리고 괴롭히던 친구가 살던 낡은 회색 집이 어느 날 커다란 기계소리와 함께 부서지더니 올려다보면 중심을 잃을 정도로 목이 꺾어져 ‘헉-’ 소리가 나오는 높고 비싼 아파트가 생겼다.


 공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이사 오기까지 먼지와 기계가 가득한 길을 툴툴거리며 지름길을 빙-둘러 돌아가던 것도 한때.


예쁜 꽃과 반짝이는 길 새벽까지 불 켜진 편의점과 향기 좋은 빵냄새 시끌벅적한 치킨 집등 각종 편의시설이 생기고 나니 퉁명스럽게 나온 입이 절로 들어갔다.

넘어져도 걱정 없는 푹신한 바닥과 끼익 끼익 소음 없는 놀이시설이 설치된 놀이터를 보니 우리 동네 아이들이 꽤나 신나겠다 절로 웃음이 났다.


 특히나 도로변 옆이라 작은 마당에 별다른 놀이 시설이 없던 바로 옆 유치원 아이들이 오후만 되면 신이 나서 단지 내 꽃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하원 길에 할머니, 엄마와 손을 잡고 뛰어 노는 모습은 해가 기울기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 이였다.


돌아가는 수고를 덜려면 어절 수 없이 지나야 하던 아파트 단지안의 풍경은 한 때 유행하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절로 떠올랐다.
 마치 그곳만 작은 동네가 새로 생긴 듯 높은 건물이 둥글게 둘러 앉아 자전거 도로와, 운동기구, 놀이시설과 주민 전용 키즈카페, 휴게실, 깨끗한 어린이집까지.
 이런 곳이라면 어떻게든 재택근무를 해서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하루 종일 강아지랑 산책을 해야지- 하는 작은 꿈(?), 희망사항을 작게 속삭이고는 했다.


희망사항이 너무 뻔뻔해서였을까.


 다른 아파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였을까.
 단지 사이를 지나는 노부부의 운동량이 부족해 보여 서였을까.
 아파트는 어느 날 자신들의 작은 동네를 지킬 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릴 때 어깨너머로 아버지께 건축을 배운 나는 완공도 전에 뼈대만 세워진 그것이 키패드를 붙이는 문이라는 사실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쪽계단의 통로까지 모두 카드키나 비밀번호를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 유리문이 둘러싼 모습은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새와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앞에는 ‘이곳에는 카드키와 비밀번호를 찍어야 입장 가능한 출입문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0월 00일부터 시행하오니 단지를 통해하는 분들은 주의 해 주세요.’


 하얗게 붙은 종이가 묵직하게 가슴을 눌러 앉았다.
 어찌 보면 자신의 집과 자신의 땅이라 당연한 건데 글을 곱씹어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괜히 심술이 났다.
 ‘이용시간이 정해져있겠지’, ‘설마 한두 군데는 개방해 두겠지’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공지 된 날짜가 되자 모든 통로의 출입문이 잠겨버렸다.


 이용 초기의 사람들은 문이 열릴 때나 상가 입구로 들어왔다 다시 나가려는 길에 문이 잠겨 발을 동동 거리며 문 좀 열어달라고 애쓰기 일쑤였다.
 혹시나 반대쪽에서는 문이 열릴까 싶어 유리문 밖의 사람들을 불러 세워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요청하기도 했으나 바깥의 사람들도 ‘여기도 카드키와 비밀번호가 있어야 해요. 죄송합니다.’ 라며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단지를 에워싼 유리문의 소문이 빠르게 퍼지자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놀이 시설에 우는 아이들을 할머니와 엄마들은 어르고 달래며 어떻게든 아이들이 떼쓰기 전 그 앞을 빠르게 지나려 애쓰고, 아침에 등교하는 근처 학교 학생들은 부족한 아침잠에 거리까지 늘어난 아침을 달리기로 시작하였다.


동네를 가로질러 지름길로 다니시던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단지 주변을 돌아서 가시고, 반찬을 가방에 잔뜩 넣은 어머니도 오랜만에 온 동네에 새로 생긴 문에 당황하여 허둥지둥 다른 길을 찾으러 다니셨다.


단지 앞에서 치킨을 사오던 아빠도 한여름에 뜨거운 치킨까지 손에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유리문을 어떻게 지나야 하냐며 전화를 하시고, 새 아파트 단지의 꽃나무를 좋아하던 강아지도 왜 저기 안에 안 들 어가냐며 유리문 밖에서 고집을 부리고는 했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차차 단지를 둘러싸고 모든 통행로에 보안 문이 세워졌다는 것에 익숙해 졌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무언가 진 것 같은 패배감과 시끄럽게 떠올리던 추억을 잃어버린 듯 한 박탈감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의 오래되고 낡은 동네.
 내 어릴 적 친구들이 살던 낡은 집.
 이제는 반짝이는 새 아파트.
 더 이상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는 길.


 ‘나도 저런 아파트에 살면 그러지 않을까?’ 하고 웃으면서도 자꾸만 유리문 안쪽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유리문 바깥의 아이가 떠오를 때마다 입안의 쓴 맛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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