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은 산을 등반하는 것과는 달라서 몸이 그다지 힘들지 않고, 적당한 리듬감만 생기면 걸을 만하다. 이번주 초에 남편과 오름등반을 할 때는 사실 몸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다리의 감각과 내 숨소리만 들리는 것을 신경 쓸 뿐 힘들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에 반해 걷기는 어떠한가. 걸으면서는 주위 풍경도 볼 수 있고, 생각도 이리저리 할 수 있다.
보통 걸으며 유튜브로 강의를 들으면서 걷기 때문에, 강의에 귀를 기울이며 걷곤 한다. 최근에 허리 디스크 증상이 너무 심해져 걷기도 서기도 힘들었는데 약과 함께 처방해 준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걷기라서 집 주위 도로 옆 보도를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작은 못을 지나칠 때 백로도 청둥오리도 보며 벗 삼고, 보도 옆 밭에 자라나는 작물도 구경하고, 겨울 억새도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 걷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다. 그래도 뭔가를 듣지 않고 걸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뭐라도 들어야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아 이어폰은 필수로 지참한다. 엊그제는 얼마간 걷다가 주머니에 있을 이어폰을 찾았는데 없어서 다시 집까지 돌아가서 이어폰을 챙겨서 걸은 적도 있다. 걷는 속도, 걷는 거리. 걷는 시간 모두 다 내가 결정하는 것으로 자유롭게 걷지만 스마트워치를 통해 걸음 수와 시간 등을 체크해 가며 하루의 걸을 정도를 결정한다. 다리가 많이 아프지 않으면 조금 더 속도를 내고, 거리도 더 많이 걸어보려 하지만 호기롭게 욕심을 내었다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어질까 봐 적절히 안배를 하는 것 역시 내 몫이다.
어제도 그렇게 기분 좋게 집을 나섰는데, 이번에는 이어폰이 문제가 아니라 핸드폰이 문제였다. 핸드폰의 배터리가 20%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왕복하는 동안 유튜브 강의를 다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조금 아쉬운 마음에 어쩌지 하면서도 이미 집을 나섰고, 그대로 길에 올라섰다. 예상대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만 들을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들었던 유튜브 강의를 복기하면서 생각도 하고, 같은 길이지만 그냥 지나쳤던 풍경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들은 기도로 이어지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음 단계의 계획의 구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걷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최근에 다 읽었던 정희원 교수님의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에서도 보면 '충분히 걷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담배를 꾸준히 피우는 것과 해로운 정도가 비슷하다.'라는 말을 읽었다. 그만큼 걷는다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행위이자 어디론가를 향해 나아가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걷는 신체활동을 통해 정신적인 건강도 충족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걸으면서 하는 생각들은 잠시 사라지는 단상도 있고, 장기간 생각해 봐야 할 고민스러운 과제들도 있다. 그럼에도 걷는 동안 앞으로 나아가는 신체의 행위만큼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들도 앞으로 나아가면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걷기와 생각을 통해 요즘 건강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함께 도모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