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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Sep 12. 2023

모국어를 2개 구사해요.

  나의 고향은 부산이다. 엄밀히 말하면 경북 청송군에서 태어나 잠깐 지냈지만 6살 무렵에 부산으로 이사 와서 부모님과 쭉 살다 부산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첫 신혼집도 부산에서 꾸렸으니, 멀찍이 있어 아득하게 기억되는 태어난 곳보다 고향과 같이 생각하는 곳은 부산이다. 그래서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의 사투리와 부산을 위주로 한 경상남도의 미묘한 사투리 차이도 당연히 안다. 또한 경상도 사람이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티브이 드라마에서 나온 서울배우들의 사투리 구사가 어색하게 느껴짐은 당연하고, 배경은 부산인데 대구 및 경북 사투리로 연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그리고 어릴 때 뉴스에 한 번씩 나와 얘기하던 분들의 경상도사투리를 듣고 놀라기도 했다. 난 분명 저 아나운서나 배우처럼 표준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 투박하고 억세게 보이는 저 말을 내가 쓰고 있다고? 하며 낯 뜨거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산에서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나진 않았어도 자라나고 숨 쉬고 물먹은 곳이어서 고향이나 다름없었고 내가 구사하는 말 또한 경상도 사투리, 부산말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 토박이로 경상도 남자와 결혼했던 엄마의 서울 억양이 나의 말에도 옅게 스쳐 지나갔다는 정도였다. 억세고 거친 경상도 말이 싫어 엄마와 엄마 친정인 서울에 갈 때면 감쪽같이 배운 적도 없는 서울말을 쓰곤 했다는 것도 살짝 다른 점이라 하겠다.


  그러다 제주로 이사 와서 7년을 살고 있다. 제주말은 언뜻 듣기에 서울말 같기도 전라도 말 같기도 하다. 어미 끝 부분을 생략하는 "완? 간? 핸? 인?"과 같이 제주어의 전형을 드러내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는 부산 여자인 내게 제주어는 영락없는 서울말 같이 들렸으니 말이다. 평생 투박하고 거친 말을 듣고 말한 나는 서울말은 항상 보드라운 비단결 같은 말이었다. 그런 동경 어린 서울 말을 제주에서도 하는구나 싶어서 자연스럽게 서울말도 아닌, 제주어도 아닌, 부산말도 아닌 말을 그때부터 섞어 구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 아닌 문제는 나의 언어정체성도 흔들려 제주 도민 속에 있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산에 살 때도 나의 말은 엄마영향으로 서울말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있긴 했으나 그래도 부산말이었는데, 제주에 와서는 이제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내가 하는 일과도 상관이 있어 책을 읽어주거나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특성상 사투리를 티 나게 구사하기는 어려워 표준어에 가깝게 발음하다 보니 이제 부산말이 옅어지고 있다. 그래서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우 나의 부산사투리를 가늠하기 어려워하며,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온 줄 알았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도 예외는 있어, 부산에 있는 지인들과 통화하거나 남편과 이야기할 때는 마음껏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며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풍기고 있다.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거쳐 자라나고 있는 우리 집 아이들은 태어난 곳이 제주가 아닐 뿐, 제주어를 하는 네이티브로 자라나고 있다. 부산이 진짜 고향이 아니었던 나였지만 내가 부산말 네이티브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집에서는 부산말을 듣고 이해하며 학교와 학원, 그 밖의 외부에서는 제주어를 듣고 하는 바이링구얼로 자라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쩌다 보니 모국어가 2개인 채로 이 상황에서는 이 말을, 저 상황에서는 저 말을 구사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모국어는 1개일 뿐, 지방 방언을 2가지로 쓰는 것으로 당연히 모국어가 2개는 아님을 알고 있다. 물론 아이들도 바이링구얼이 아니다. 하지만 모국어가 나고 자란 곳의 어머니 말을 뜻하는 것이라면 고향에서의 말과 고향을 떠나 제2의 고향으로 살아가고 있는 곳의 언어를 그곳에 맞게 구사한다면 그것 역시 모국어라고 주장해 본다.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모국어가 2개라는 표현은 당연히 맞지 않고, 아이들도 바이링구얼이 아닙니다. 에세이 속의 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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