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이들과 서울여행을 다녀왔다. 남편 없이 자차가 아닌 아이들과 셋이서 떠나는 여행은 설렘보다 긴장과 불안한 마음을 주었다. 준비를 하고 계획을 세워도 왠지 불안하고 고작 2박 3일의 시간일 뿐인데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여행을 앞두고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부랴 부랴 항공편과 숙소를 변경해서 예약을 새로 하고 일정도 정비했다.
아이들과 한 해에 한 번은 역사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이번 서울 여행도 그런 콘셉트로 잡아봤다. 원래 한 해에 한 번 떠나는 역사여행은 주로 남편의 여름휴가 기간에 맞추어 일정을 조금 길게 잡고 움직인다. 제주에서는 육지를 가는 것도 해외로 간주될 만큼의 준비가 필요하므로 그에 맞추어 비행기 일정과 세부 사항을 잘 조절해야 한다. 재작년에는 경주로, 작년에는 부여, 공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둘 다 공항이 없는 지역이라 경주에 갈 때는 부산김해공항으로 가서 여행을 시작했고, 부여, 공주로 갈 때는 배를 타고 차를 탁송해서 완도로 이동했다. 그에 비해 이번 서울 여행은 기간도 짧고 렌트나 자차의 이동 없이 몸만 가는 여행이어서 수월할 것 같으나 남편 없이 여행한 적이 처음이라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수도권에게 사는 지인들에게 물어 서울을 제대로 여행한 적이 없는 초보 여행가들에게 추천하는 코스로 조언을 구했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광화문이 좋겠다 하여, 광화문 쪽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도 가격과 컨디션을 고려해서 무난하다고 생각한 신라스테이로 정했다. (나중에 둘째는 수영장이 없는 숙소라며 조금 실망을 했지만 나는 만족이었다.) 인천에 지인이 하는 카페에 같이 북클럽 하는 멤버가 다 모이기로 해서 김포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인천으로 향했고, 모임을 가졌다. 그 이후로 서울로 이동하여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하기 전 일정표를 시간과 장소, 여정별로 꼼꼼히 짰다. 갈 식당도 미리 알아두고 영업시간과 휴무일 체크, 지도로 위치도 파악해 두었다. 혹시나 해서 플랜 B도 작성해 두었다. 그런데 숙소에 밤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니 정신도 없었고,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라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려고 해서 발길 닿는 대로 갔는데 세상에! 미리 일정표에 있었던 식당이었다. 시장이 반찬이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해 가며 먹었다. 후에는 교보문고에 가서 원하는 책을 한 권씩 사고 숙소로 귀가했다. 각자가 원하는 책을 품에 안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여행의 기쁨이었다.
둘째 날은 오전에 1개, 오후에 1개 일정을 잡아서 움직였다. 오전에는 더현대서울에서 주최하고 있는 폼페이 유물전, 오후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일정으로 잡았다. 오전에 더현대 서울까지는 광화문과 같은 노선인 지하철 5호선으로 비교적 쉽게 갈 수 있었다. 도슨트투어 시간에 맞추어 갔는데 한이준 도슨트가 하는 날이어서 너무 반가웠고 잘 들었다. 한이준 도슨트는 금요일에만 해설을 한다고 하는데 이런 행운이 있을 수가! 남편과 이탈리아에 갔을 때 폼페이도 방문했었다. 그런데 간단한 지식만 있어서 그런지 현장에 직접가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폼페이에 비해 유물도 몇 점 없는 이곳이 한이준도슨트 덕분에 너무 풍성하고 재미있는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모든 일정 중에 폼페이유물전이 제일 좋았을 만큼 말이다. 더 현대서울에서 식사 웨이팅을 해 두고 아이들과 레고부스에 가서 구경을 했다. 여기서도 원하는 레고를 사주니 고객님들(아이들)이 대만족 하셨다. 베트남 음식점에서 맛있게 먹고, 두 번째 장소로 이동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층부터 내려오며 관람하라고 되어 있어서 그대로 관람했다. 3층에는 우주와 태양계에 대한 전시였는데, 전시물이 오래전에 제작된 것이어서 세월감이 많이 느껴졌다. 2층에는 동물에 대한 전시로 이곳을 아이들이 매우 좋아했다. 동물원에 가도 다 볼 수 없는 동물들을 생생하게 박제하여 전시해 두었는데, 정말 많은 동물들이 종별로 다 있었다.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지만 동물들을 이렇게 죽여 박제한 것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1층은 리뉴얼하여 제일 최신식으로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식물과 살아있는 생물(물고기, 뱀)을 볼 수 있었고 공간 자체도 쾌적하였다. 관람을 잘 마치고 숙소로 이동해서 쉰 다음, 둘째가 노래했던 칼국수도 먹고, 스타벅스에서 간식도 사 와서 보드게임도 하며 만족스러운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셋째 날은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를 맡기는 일정이 첫 번째였다. 광화문역사에 있는 라커에 캐리어를 맡기려고 미리 알아봤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너무 멀리 있어 캐리어를 지하철 계단에서 들어서 한 칸 한 칸 내려가며 이동했던 것이 힘들었다. 짐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이동해서 간 곳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었다. 근현대사를 다루는 박물관이었는데, 10시 30분에 시작하는 도슨트 투어에 맞추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들으며 관람했다. 4층에 체험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근현대사에 맞춘 여러 즐길거리와 체험부스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즐거워했다.
점심은 일부러 조금 늦은 점심으로 웨이팅을 피하고자 했는데 이미 이름난 곳이어서 그런지 웨이팅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은 일민미술관 1층 카페이마 로, 유명한 함박스테이크를 1인 1개씩 뚝딱해 치웠다. 마지막 코스는 큰 아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대망의 장소로 이동했다.
큰 아이가 원한 대망의 장소는 바로 경복궁이었다. 광화문 광장을 걸어 관광객들만 하는 세종대왕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광화문 앞에서도 사진을 찍고 경복궁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따로 도슨트 투어를 신청하지 못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대신에 눈과 마음에 경복궁의 구석구석을 담으려고 애썼다. 마지막에는 경복궁을 나오면서 오른편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렀다.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시관의 상태와 구성이 매우 좋았다. 아이들도 잘 즐기며 관람했다. 이 역시도 도슨트를 놓쳐서 아쉬웠지만 다음에 경복궁과 함께 다시 찾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기약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이동을 하고, 탑승수속을 다 마친 뒤, 아이들을 간단히 먹이고 비행기에도 무사 탑승했다. 공항에 마중 나와 기다린 남편과 무사 귀가도 물론이었다. 집에 와서 추억과 짐을 함께 풀고, 아이들을 재우고서는 나의 고생담을 남편에게 풀었다.
길치에, 지도도 잘 보지 못하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초행길의 - 코 베어 갈지도 모르는 서울-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는 기쁨이 매우 컸다. 남편은 내친김에 본인 없이 이제 해외도 가면 되겠다고 했는데,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흘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방에 사는 누군가가 아이들과 서울여행을 계획한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하며, 우리와 같은 박물관 위주의 역사탐방여행도 매우 좋다고 권하고 싶다. 기간 내에만 볼 수 있는 폼페이 유물전과, 어린아이가 있다면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과 여러 부분이 좋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도 다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다녀온 모든 곳을 추천하고 있는 모양새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던 서울여행이어서 다시 언제 갈지 달력을 보며 계획을 또 세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