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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은 Nov 28. 2021

나의 '남의 집' 여행기

작년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남의 집 거실로 떠난 여행 회고록

남의 집 거실에서 즐긴 글쓰기 모임


2020년 5월 어느 주말, 나는 계동 한 찻집에 앉아 직접 마셔가며 중국 6대 다류를 배웠다.

또 다른 주말에는 프리랜서 작가분의 집 거실에서 다른 2명의 참가자와 함께 글짓기 모임을 했다.

6월에는 아지트 느낌 물씬 나는 서초의 한 지하 찻집(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진 '디 마르가리따')에서,

이와 대조적으로 또 다른 주말에는 누군가의 정원에서 햇빛을 만끽했다.

7월에는 멋쟁이 건축사무소 소장님께서 직접 설계한 '숭인공간'을 구경했고,

끝으로는 '두강당'이라는 공유 공간에서 막걸리와 함께 각자의 여행 경험을 나눴다.


분명 3개월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어요?라고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데 내게 일어난 변화는 사실 단 하나다. 바로 "남의 집 거실 여행자"가 된 것이다.


무슨 말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 분들을 위해 좀 더 설명하자면

남의 집은 "가정집 거실에서 낯선 이들과 집주인의 취향을 나누는 거실 여행 서비스"이다.

백문이불여일견. 홈페이지를 참고해보시라.

이 남의 집 서비스의 서포터즈를 바로 '거실 여행자'로 부르는데 나는 작년 초봄, 1기로 참가했다.




본업 외 제대로 몰입해서 즐긴 몇 안 되는 활동이었다.

아니 재밌지 않고서야 3개월을 저렇게 알차게 여행 다닐 수 있었을까?

그 재미가 어느 정도였는지 예를 들면 파하기 싫어서 2차, 3차, 4차로 이어지는 술자리 모임, 아니면 적어도 먼저 들어가라고 계속해서 인사하는 모임 정도였다.

7월 서포터즈 활동은 끝났지만 

6대 다류를 배운 그 찻집 두어 번 더 다회에 참가해 차를 함께 즐겼고, 

디 마르가리따에서는 뒤풀이, 뒤뒤풀이에도 가고도 성에 차지 않아

행사도 가고, 동생과도 가고 단골이 될 정도였다.


또 단순히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정리하기에 이 시간이 내게 남긴 건 생각보다 선명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이 여행의 장면들이 불쑥 떠올랐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바로 '숭인공간'으로 떠난 여행이다.


저기 멀리 보이는 흰색 건물이 바로 숭인공간이에요.


숭인공간을 구경하면서 내가 든 생각은

왜 나는 이제껏 '집'이라 하면 아파트 또는 주택만 떠올렸을까? 였다.

내가 원하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집을 상상해볼 수 있는데 말이다.


또 전소장님께서 앞으로 어떤 집을 살고 싶은지 생각할 때 무엇보다 자기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효율성을 따진다면 아파트에 들어가는 게 맞아요.
어떻게 하면 넓어 보이는지, 통상적으로 살기 편하게
이렇게 최적화된 게 바로 아파트예요.
하지만 집에 다른 의미, 특히 정성적인 가치를 두신다면
내 집을 짓는 거죠. 여유가 되신다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를 많이 상상해보고 건축사를 찾으세요.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미리 그려둔 게 없으면
건축사만 쫓아가다가 집을 다 지어갈 때쯤에서야 
내가 원하던 '내 집'은 이런 게 아닌데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그때는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죠.
평소 나의 생활 패턴에 주의를 기울여보시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생각해보면서
내 집에 대해서 점점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면 좋을 듯해요.




결국 집의 형태가 곧 내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

남의 집 여행에서 얻은 '집'에 대한 꽤 묵직했던 교훈이다.

나는 어떤 집에 살까? 이를 적극적으로 고민할수록 내 라이프 스타일, 더 나아가 삶에도 적극적인 거겠지.

그래서 그런가.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길 좋아하는 내가 집에 대해 탐구하길 즐기기 시작했다.


모쪼록 그리운 이 오프라인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운 건 다정한 이들과 교류하며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 시간,

그때 느끼는 약간의 혼란, 설렘.

내게는 '일상의 생기'로 요약되는 감정들.




경험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늘 다양한 경험에 열정이 넘치지만

사실 폭넓은 경험은 본격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쉬이 얻기 어렵다.

그런데 남의 집이라는 공간, 플랫폼 하나에 이렇게나 다양한 주제의 경험이 담겨 있다.

또 단순한 '경험', '체험'이 아니라 "집"이 들어가니, 호스트로서 손님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온도가 달라진다.

일반 고객이 아니라 일일 손님으로서 남의 집에 들어가 보자.

이제껏 느끼지 못한 색다른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다가오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또 언젠가 도래할 코로나 종식 시대를 기대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이 가져다주는 이 일상의 생기를 훈훈하게 느끼기를 바라며 이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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