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다섯 명의 'Pathfinder'를 만났고 왔어요
팬데믹이 만들어낸 ‘일상의’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는 수많은 컨퍼런스가 온라인으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먼 길 찾아갈 필요도 없이 어디서나 쉽게 접속할 수 있고, 거기다 발표 자료까지 내 노트북 화면을 꽉 채워 볼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이 변화에 굉장히 만족한다. 덕분에 올해는 작년보다 콘퍼런스를 2배 정도 더 많이 참가하고 있다.
컨퍼런스를 신청할 때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내가 컨퍼런스를 찾는 이유는 ‘다양성’, 이 하나로 설명된다. 지금 소속되어 있는 조직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갈증이 있고, 그 서로 다른 관점을 들을수록 디자이너로서 나다움을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은 FDSC STAGE에서 이런 자기긍정감을 진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올해로 3번째를 맞이하는 이번 FDSC STAGE는 ‘여성 디자이너’라는 맥락 안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는 5명의 디자이너가 본인만의 길을 만들어간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나처럼 디지털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밀리의서재 이영주님부터 제로웨이스트샵 ‘더커먼’을 운영하시는 강경민님. 뉴미디어 스브스뉴스 총괄 디자이너 김태화님, 본인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시는 박은지님, 그리고 전 닷페이스 디자이너 김헵시바님까지.
내 인맥으로는 쉽게 만나 뵐 수 없는 분들과 한데 모여 화면을 넘어 인사이트, 위로, 응원, 공감을 나눌 수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말씀을 '나의 언어로 해석해' 기록해본다.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지 빨리 규정하고 증명해내야 한다는 불안감이 들 때면 일단 그 생각을 떠나보내자.
닷페이스 디자이너 김헵시바님께서 같은 고민을 하신 경험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경계를 정하지 않고 했던 경험들이 오히려 본인을 아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하게 공유되었던 온라인 퀴퍼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 역시 동료와 대화 중에 툭 나온 아이디어를 현실화해본 것이라 한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는데 업무 범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갑자기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나에게 너튜브 영상 편집을 시킨다거나..) 머리로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에는 결국 경험이 답이다. 내가 어떤 디자이너일까 알아보고 싶다면 일단 지금 하는 일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보는 게 최선 아닐까?
겸손이 미덕이지만 일의 성과는 말을 해야 존재한다. 내 성과를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자.
또 본인 스스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내가 만들어 낸 성과를 긍정하고 내 경험의 힘을 믿자.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믿을 구석이 어딨냐고? 바로 내가 해온 업무들, 내가 거쳐온 모든 시간이다.
회사 업무에 대해 아쉬움이 남을 때 어떻게 대처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영주 디자이너분께서는 현명한 답변을 해주셨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서 근거 있는 아쉬움을 추구하자고 조언하시면서, 프로덕트 디자인에 있어서 기발하지 않더라도 기획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첨언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공감되었다.
본인 KPI가 탄탄하게 세워 뒀다면 그 어떤 번쩍번쩍한 디자인도 갑분 현타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언어를 아는 사람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코드 리뷰와 달리 디자인은 정말 아무에게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매력적이긴 하지만 힘들 때도 많은 게 사실이다. 역시 모든 디자이너의 고충인지 '피드백 얻고 반영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나요?'라는 질문이 있었고 다섯 분 모두 자신만의 팁을 적극 나눠주셨다.
- 피드백 수용하는 게 자신감을 가지는 것과 반대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 핵심 멤버와 주요 사용자의 의견을 받아라. 펼쳐놓고 하는 피드백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해서 지양한다.
- 내 디자인 콘셉트를 제대로 이해를 시키고, 피드백을 받고 싶은 부분을 좁혀서 물어보자. 지금 내 디자인이 어떤 단계에 있는데(예를 들어 아이데이션 단계인지, 출시 전인지) 어떤 내용의 피드백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요청하자. 이때 요청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그저 참고만 하기로...
- 내가 남에게 피드백을 해야 하는 입장일 땐 좋은 점을 먼저 이야기하자. 피드백을 더 피드백스럽게 만든다.
대표 프로듀서 이름만 적는 게 일반적이던 뉴 미디어 업계에서 디자이너 크레딧 명확하게 표기하는 것부터, 디자이너의 업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업무 프로세스 변화까지. 기존 시스템의 어려움을 용감하게 해결하고 있는 김태화님.
각자의 크레딧을 더 큰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도 현시점에서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크레딧을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아갈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김헵시바님.
두 분 외에도 본인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을 제거해나가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이 다섯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얻은 가장 따듯하고도 무거운 교훈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