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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은 Mar 27. 2022

어쩌다 공모전

링글 서비스 기획 공모전 참가한 후기


이제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할지 말지 고민한 일이 있나 싶다. 반면 해야겠다 결정하고 난 뒤에는 치열하게 즐겼는데(?) 이게 다 무슨 말이냐면 바로 첫 사이드 프로젝트로 참가한 '링글 공모전'에 대한 소감이다.


뭐가 되었든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는 해봐야 한다며 경험(혹은 스펙)주의자처럼 이 공모전을 신청한 건 아니었다. 디자이너로 고용된지는 3.5년이 다 되어가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어느 정도 방향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설계 중인 이 기능이 전체 프로덕트에서 어느 정도의 경중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이 과제는 이렇게 접근해볼까, 이 문제도 풀어보자 제안할까 등 적극적으로 과제를 진행하고 역량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일 하는 재미를 맘껏 누리고 있는 동시에 이 모든 성장이 회사 밖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나 나는 입사 이후 쭉 지역 사업 부서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내 시야가 지역 서비스 한정된 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매주 영어 학습을 위해 방문하는 링글 홈페이지에서 공모전 배너를 보았다. 링글의 콘텐츠를 활용해 유료 학습 서비스를 기획하라는 미션이었고, 링글을 3년 정도 쓰고 있는 유저로서 공감되는 방향성이었다. 무엇보다 친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주제이라 더욱 끌렸다. 회사에서 IT서비스 전문가와 일하고 있으니,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나를 새로운 영역에 던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비스 기획에 경험은 없지만 영어 교육 콘텐츠를 기획해본 언니와 서비스 기획 공모전이 바로 그런 영역이었다. 아예 다른 직군의 사람과 협업이야 말로 (힘들지만) 내 역량에 대해서 제대로 마주하기에 이만한 일이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언니에게 '영어 서비스 기획 공모전 해볼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보다 늘 용감한 언니는 '좋아. 난 뭘 하면 돼?'라고 답이 왔다.




Siblingle(Sibling+Ringle) 팀이에욧


그렇게 공모전 준비를 시작했다. 친언니는 베트남에 거주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과정을 원격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구글 Meet에서 토의하고, Figma로 아이디어와 화면을 시각화하고, Keynote로 함께 발표 자료를 정리했다. 회사에서도 팬데믹 이후 쭉 재택근무 중이라 원격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딱히 걱정하진 않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매끄러워서 솔직히 놀라긴 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충분히 원격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화이트보드 앞에서 진행하는 브레인스토밍이 그리울 때도 있었고, 언니와는 아이스 브레이킹이 필요 없다는 영향도 컸다. 그렇지만 대면이 효율적인 업무와 개인 진행이 효율적인 업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서 오히려 시간 대비 효과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공모전 과정은 크게 기획안 서류 제출 → 본선 팀 선정 → 피드백 섹션 → 본선 발표로 진행되었다. 또 서류 제출 기한 전에 세 번의 Q&A 섹션이 있었고, 궁금한 점을 바로바로 질문할 수 있는 오픈 채팅방도 있었다. RFP도 구체적이었고, FAQ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주셔서 우리 팀은 따로 Q&A 섹션에 참가하지 않아도 과제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이렇게 서로 싱크를 맞추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주셔서 단순히 공모전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진짜 서비스 기획에 접근할 수 있었다. 물론 실제 데이터를 얻기 힘들어서 우리의 접근이 논리적이기보다는 사용자 관점에서 떠올릴만한 새로운 아이디어에 가까웠을 거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도 서비스를 만들면서 필요하다 보기 때문에 실무자에게는 의미 있는 접근법이고, 참가자에게는 추천할만한 공모전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 본선 발표를 했다.

간단하게 셀프 리뷰도 남겨보면

잘한 점
- 시간 대비, 2명이라는 리소스 대비 굉장히 잘 준비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 서로가 할 수 있는 역량에 집중했다.
- 사용자/외부인이라 볼 수 있는 시 각에 집중했다. 실무자가 더 잘 알 수 있는 디테일에 빠지기보다는 큰 방향성을 제시하려고 했다.

아쉬운 점
- 전체 기획안을 전략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정리했는데, 의도하진 않았고 사업이나 서비스 관점에서 전략적인 접근에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한계다! 이 부분을 더 배우고 싶다!
-  발표 구성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을 했냐 하면 솔직히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생각한 각 기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있었을 텐데,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깊진 못했다.
- 발표 때 긴장 좀 했다. 언니 말로는 인트로에서 말이 너무 빨라서 폭주기관차인 줄 알았다고(!) 솔직히 그 부분이 자신이 없긴 했다.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공모전 괜찮았냐 물으면 본인만의 뚜렷한 목적이 있다면야 해볼 만한 선택이라 말하고 싶다. 예전에는 모든 경험이 의미 있다 생각해서 본능에 따라 결정하고는 했는데, 커리어 패스에 있어서는 한 선택이 체스의 한 수처럼 전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투자한 시간이라 의미 있었다.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훈련, 비전공자와 협업하며 내 역량을 파악하는 훈련, 다른 회사 사람과 소통하는 훈련, 아웃소싱으로 기획/디자인 업무를 수행하는 훈련 등을 꽤 합리적인 비용으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앞서 언급했던 내 역량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확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거쳐온 시간이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확신이 생기면서 본업이 더 재미있어졌다. 이게 바로 남들이 말하던 사이드 프로젝트의 순기능인가 요란법석 떨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잘 해내진 못하더라도(완벽이 큰 의미가 있다 생각하지도 않고) 이 시간을 거쳐 나는 성장할 것이라는 걸, 원하는 만큼 성장하기 위해 전력투구할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이 생겼다. 이러한 자기 확신과 함께라면 급변하는 IT업계를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끝으로 이번 도전 역시 함께라서 가능했다. 언니와 함께 한 2개월은 단순히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각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언니가 IT서비스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걸 보면서 나 역시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내 일을 제대로 마주하고,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협업은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함께여야 닿을 수 있는 곳, 혼자서는 절대 가지 못할 곳이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함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내일도 열-협업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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