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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momo Feb 07. 2024

방방 할머니

  우와~ 드디어 여름방학이다! 

  1학기가 금방 끝났다. 엄마는 회사에 가기 때문에 방학동안 우리를 할머니집에 맡기셨다. 할머니집에 가는 건 재미있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셋이나 있다. 아빠의 엄마 할머니, 엄마의 엄마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 할머니.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는 바로 엄마의 엄마의 엄마 할머니인 방방 할머니다. 우리는 왕 할머니를 방방 할머니라 부른다. 할머니가 우리를 업고 방방이를 태우듯 재미있게 해 줬기 때문이기도 하고, 할머니가 방방! 방방! 하며 두 팔로 엉덩이를 받쳐 덩실거렸기 때문이다. 아기 때 할머니 집에 오면 나는 엄마 등도, 할머니 등도 안 되고 방방 할머니 등에 업혀야만 잠이 들었다고 했다.

  방방 할머니는 나랑 나이 차이가 엄청난다. 내가 여덟 살인데, 방방 할머니는 팔십이 더 많다고 했으니 팔십 여덟 살이다. 내가 몇 밤을 더 자야 팔십 살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방방 할머니가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방방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아신다. 어떨 땐 엄마보다 더 잘. 방방 할머니랑 개구리를 잡아서 주전자에 가득 담아 온 날,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악! 개구리를 도대체 몇 마리나 잡아온 거야! 무당개구리 아냐? 만지면 안 돼!"

  그때, 방방 할머니가 엄마한테 그랬다.

  “야가 뭐라카노! 개구리만큼 깨끗한 게 어디 있다고!”

  엄마한테 혼나는 줄 알았다가 엄마가 왕 할머니한테 혼나는 걸 보고 나는 킥킥 웃었다. 엄마는 사실 겁쟁이다. 메뚜기 한 마리만 튀어 올라도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집에 오면 방방 할머니하고 놀러 다닌다. 방방 할머니는 자기 전에 자장가도 불러주고 나를 꼭 안아준다. 간지럽다 그만하라 하시지만 방방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배를 만지는 것도 재미있다. 


  할머니 집은 논밭이 펼쳐진 시골 마을이다. 큰 정자나무 하나를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제일 첫 집이 할머니 집이다. 할머니 집은 파란 대문 집으로 불렸는데, 언젠가 대문을 초록색으로 바꿨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파란 대문 집이라 했다. 할머니 집 앞집에는 욕쟁이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할머니가 새까만 눈으로 나를 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방방 할머니한테 욕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방방 할머니가 더 센 게 분명하다. 

  욕쟁이 할머니는 대문 앞에 놓아둔 빨간색 고무 화분에 심은 채소와 나무를 손보면서 “쌔가 만발이 빠질 놈” 같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는데 얼마전에 그게 욕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방방 할머니가 “아 듣는데 욕 좀 하지 마소.” 해서 그게 욕이라는 걸 알았다. 그 후로는 나와 마주치면 꼼짝 말고 서 있으라 해놓고는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를 들고 나오곤 했다. 몇 번 요구르트를 얻어먹고 나서는 더 이상 욕쟁이 할머니가 무섭지 않다.

  할머니 집을 나와 아카시아 나무가 늘어선 길을 지나면 털보 아저씨네 집이 나온다. 어릴 때 배웠던 털보 아저씨 노래에 나온 딱 그 모습의 아저씨같이 생겨서 내가 털보 아저씨라고 붙였다. 털보 아저씨는 뭐가 그리 바쁘신지 매일 빠른 걸음으로 무언가를 들고 나르거나 땀을 흘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집 앞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는데, 중장비 노래에도 나오지 않은 처음 보는 차들이었다. 방방 할머니한테 물어보니 경운기라고 했다. 어떤 것은 꼭 불도저같이 생겨서 “불도저다! 불도저!”라고 했는데, 방방 할머니가 “불도저는 또 머시고. 우리 샛강구가 그런 것도 알아요?” 하며 대견해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농사에 쓰는 트랙터라고 했다. 하지만 방방 할머니가 나 때문에 불도저라고 불러서, 나는 그 기계를 보면 그냥 불도저라고 불렀다.

  털보 아저씨네 집을 지나면 감나무가 띄엄띄엄 늘어서 있고, 조금 지나면 매화나무, 그리고 밤나무 같이 먹을 것이 천지였다. 방방 할머니는 맛있는 것만 있으면 얼른 내 입에 넣어주거나 챙겨 온다. 언젠가 노랗게 익은 홍시 감을 똑 따서 가져와 먹는데 할머니가 대뜸 방방 할머니에게 “어무이, 어디서 난 거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방방 할머니는 “우리 똑때기 데리고 한 바퀴 하다가 떨어진 감이 있어서 주웠지 뭐.”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숟가락으로 그 달콤한 홍시를 푹 퍼서 내 입으로 날라 주시는 거였다. 할머니는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시며 “남의 집거는 절대로 따모 안 돼요. 엄니”하고 방방 할머니를 단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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