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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Apr 07. 2023

우리가 미안해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이별이라는 무게


“악!!! 엄마, 엄마!!”


”무슨 일이야? 왜 그래? “


”엄마, 겨울이가 겨울이가 이상해 와서 봐봐 얼른. “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들이 벌거벗은 채로 얼음이 되어 화장실 문 앞에 서 있었다. 화장실 문 앞 코너에 자리하고 있던 겨울이의 사육장 앞에서 뭔가 단단히 잘못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안 봤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겨울이 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겨울이는 우리 집 애완 도마뱀이다. 아이는 몇 년째 강아지, 고양이, 도마뱀 다양한 애완동물들을 열거해 가며 키우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참이었지만, 아이에게 우리 부모는 늘 한결같이 단호했었다.  ”네가 스스로 케어할 수 있을 때, 애완동물은 그때 키우는 거야. “


단호했던 우리의 태도와는 무관하게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자꾸 커져만 갔다. 아이가 4학년을 앞두고 있던 겨울, 친구들이 하나 둘 도마뱀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 지내던 아이들의 정서적 위안과 교류를 위한 엄마 아빠들의 방침이었을지도 모른다. 피부 알레르기가 있는 나에게 강아지 고양이는 꿈의 동물이었다. 혼자 늘 심심한 아이에게 또 형제 없이 혼자인 아이에게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마뱀이라는 동물은 내 생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몇 달이 되도록 아이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친근감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 아이는 친구집에 들러 도마뱀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듣고 오더니  자신도 도마뱀 집사가 되는 상상을 하며 희망을 키워갔다. ‘스스로 알아서’라는 말을 반복해 가며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아이 혼자서 밥 주고 사육장도 청소해 주고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과 자신이 생겼을 때, 우리 가족은 도마뱀 입양을 계획하고 인근의 큰 애완동물 가게에 갔다.


작고 귀여운 도마뱀은 생각보다 징그럽지 않았다. 심지어 새끼 도마뱀은 주사기로 먹이를 주었기 때문에 너무 귀엽고 앙증맞아 예뻐 보이기 까지 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두려움을 느끼던 나에겐 정말 큰 변화였다. 우리 집에 도마뱀이라니,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변화에 변화를 맞이하며 엄마 아빠도 크는 일이다. 그렇게 아이에게 동생이 생겼고, 겨울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아이는 극진하게 겨울 이를 케어했다. 매일 딱 15분 겨울 이를 꺼내 같이 놀아줄 수 있다고 했는데 시계를 체크해 가며 겨울이와의 놀이시간을 지켰다. 자기 이 닦는 일도 귀찮아서 미루는 아이가 아침저녁 물도 잘 뿌려주고 2-3일에 한 번 열심히 밥도 주고 사육장도 말끔히 청소를 하면서 형아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눈이 크고 동그란 겨울이는 자꾸 보니 귀엽기까지 했다. 절대 만지거나 가까이 갈 자신은 없었지만 아이가 겨울이를 케어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흐믓한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해 준 대로 아이가 도마뱀을 케어해 주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겨울이는 건강하고 조용하게 잘 컸다. 주변에 도마뱀을 입양하는 친구들이 늘어났고, 아이는 친구들과 통화하며 매일 도마뱀들의 생활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겨울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아이는 하나 둘 겨울이 용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겨울이를 위한 장난감, 은신처, 먹이용 숟가락, 놀이터 등등등. 그러다 겨울이를 위한 보금자리를 크고 좋게 만들어 주겠다며 생일선물 받고 싶은 리스트 1순위로 겨울이의 사육장을 골랐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겨울이의 사육장은 매일 청소하기 쉽던 작은 사육장에 비해 청소하기 번거롭고 무거웠다. 구입하면서 아이에게 엄마는 겨울이를 만질 수 없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으니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계속했다. 처음엔 의욕만큼이나 열심히 겨울이의 새 사육장을 청소하고 꾸며주던 아이는 조금씩 겨울이의 사육장 청소를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도마뱀 키우기에 대해 잘 모르니까 전적으로 아이에게 맡겨두었고, 아이는 조금 귀찮아하기도 하고 종종 놓치는 일이 생기기도 하면서 처음만큼 지극정성 도마뱀을 돌보지는 못했다.


요즘 들어 계속 밥을 덜먹는 겨울이 때문에 가족들끼리 식사하며 걱정을 하기도 하고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새로운 맛의 먹이도 주문했다. 아이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더 깨끗하게 청소하고 잘 돌보기로 다짐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던 중에 일이 일어난 것이다.


평소에도 없어진 줄 알만큼 꼭꼭 숨어 잠들고 조용하기만 했던 겨울이, 그래서 더 무뎌졌는지도 모른다. 늘 그랬듯이 이불 덮고 자는 것처럼 밑에 숨어 조용히 있는 줄 알고 달려갔는데 싸늘하게 굳어 온몸이 쭈뼛하게 서서 누워있는 겨울이의 모습과 커다란 눈을 보고 만 것이다.


아이와 난 우리가 본 눈앞의 사실이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아서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아이는 주룩 주룩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자책했다. ”내가 잘 못해줘서 그런가 봐 엄마, 난 애완동물 키우면 안 되는 거였어. 어떡해 어떡해. “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에게 뭐라고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망설여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들었던 생각들이 부끄러웠다.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다하게 하고 너무 나 몰라라 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한 번 두 번 치워주다 보면 결국 다 내 일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예 자체적 차단을 하고 모른 척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육아도 그렇다. 아이를 다 키운 것 같지만 알아서 잘한다고 조금씩 모른척하면 꼭 탈이 난다.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란다는 처음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가 자라면서 뭐든 스스로 척척 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처럼, 조금씩 관심 궤도를 벗어나 알아서 커야 했던 겨울이는 외롭고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먼저 도마뱀과 이별했던 친구가 어제저녁 우리 집에 왔다. 하굣길에 아이가 속상한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고 같이 울었던 모양이다. 둘은 깨끗한 휴지에 겨울이를 감싸고 잘 보내주겠다며 집을 나섰다.


돌아와서 이불 위에 엎드려 펑펑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겨울이 혼자두고 못간다고 여행도 못가겠다고 했던 아이인데,,, 스트레스 받는다고 마음대로 옮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떤 말이 아이를 위로할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고 죄책감이 밀려오는데 아이는 얼마나 더할까. 둘이 눈이 마주쳤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다음엔 꼭 자연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며 행복하게 지내길, 온 가족이 함께 마음 모아 빌었다.


이별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무거운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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