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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Mar 31. 2023

집으로 출근하던 삶이 싫어서

프리랜서 시행착오

회사를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되기로 했던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의 집으로 출근을 했다. 기관으로 강의를 가던 강사에서 영어 스토리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수업을 하고 필요한 기본기를 다져주는 과외 선생님이 된 것이다.


기관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지만 초등 저학년 친구들에게는 이만한 수업이 없다 싶을 만큼 만족도가 좋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그룹을 이룬 아이들에게 찾아가 그룹과외를 하며 알파벳도 모르던 아이들이 즐겁게 책을 읽고 게임하고 교구놀이하며 듣고 말하고 이해하고 읽고 조금 쓸 수 있을 때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아이들을 만나며 영어 수업을 했다.


엄마표 영어라는 말이 막 시작되고 붐이 일던 즈음이었다. 원서 읽기 도서관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도서관을 하나 운영하고 싶어 기웃거리기도 했으나 결혼, 출산과 맞물려 잠시 그 마음을 접어두고 일하는 시간이 자유로운 과외 선생님으로 열심을 다해 일했다.


내가 하던 수업의 큰 장점은 아이들이 공부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통 2년 동안은 아이들이 기다리며 하는 수업이 되었고, 아이들의 실력이 몰라보게 늘어나는 것도 눈으로 보이니 아이와 학부모님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 그렇게 쭉 즐겁게 영어를 접하며 자연스러워질때까지 원서 수업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특성상 언제까지 재미를 위주로 책만 읽어줄 수는 없었다. 3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영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엄마들의 니즈에 맞추어 사이드로 문법 교재도 풀어야 하고 가끔 단어도 외우며 조금씩 스토리북과 놀이식 교구학습법에서 교재학습법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스토리북 수업이 좋아서 시간마다 선생님을 기다리던 친구들은 조금씩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가르치는 나도 신이 덜 났다. 영어는 학습이 아니라 언어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노출과 반복으로 젖어들듯 이해하고 익혀나가야 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마냥 그렇게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씩 스타일을 바꿔나가야만 했다. 아이들의 즐거운 참여도와 아웃풋 사이에서 나는 늘 갈등해 왔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들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까를 연구하느라 머리가 복잡하고 손발이 바빴다.

 

처음엔 함께 모여서 재미있게 수업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수업이 어려워지고 과중이 되니 예전처럼 즐거워하며 수업에 참여하진 않았다. 게다가 3-4학년정도 되면 친구들의 대부분은 친구들과 모여서 놀고 싶은데 모이자마자 선생님이 오니까 날 반가워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영어 수업처럼 이렇게 모여서 하는 시간이 아니면 아이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이고 선생님이 오기 전, 딱 그 10분이 아이들에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5분만 있다 해요’, ‘오늘은 10분만 있다가 하면 안 될까요?’, ‘ 게임데이 해요 선생님.’ 아이들의 요청은 날마다 늘어났다. 남자아이들 4명이 함께 하던 그룹수업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3년 가까이하다 보니 선생님이라기보다 엄마에 가까운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필통은 당연히 없고, 연필도 안 깎아서 나오질 않는 것으로 쓱쓱, 친구들끼리 서로 툭툭 거리며 빌려주지도 않아 급기야 난 연필 지우개 자동 연필깎이까지 들고 수업에 들어갔다. 교구와 교재뿐만 아니라 수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들고 아이들의 집으로 출근하던 나는 때때로 스스로가 보따리 장사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이 있어 주차를 하고 올라갔다. 수업시간이 다되어 현관 앞에서 벨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분명 벨 누르기 전에 소란한 소리를 들었는데 아이들은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벨을 눌렀지만 아이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고 열어주지 않으면 엄마께 전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했고,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겨우 수업하러 방에 들어갔지만 아이들도,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과외를 그만하고 학원으로 가자고 하면 아이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절대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그땐, 내 아이가 작고 어려서 3-4 학년 친구들의 마음을 100%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꾀를 내고 장난치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팀 친구들은 다 의젓하게 잘하는데 유독 이 팀 친구들만 그렇다며 날 힘들게 하는 팀이라고 투털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는 지금, 아이들에겐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읽고 배웠으면 생각하고 소화할 시간, 학교갔다 돌아오면 잠깐 쉬면서 놀 시간,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 시간 말이다.


매일 생각했다. 이렇게 수업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수백 번의 질문에도 ’NO’라는 대답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더 이상 집으로 출근하는 일은 그만할래.

나는 과감히 수업을 그만두고 좀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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