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고 이해의 길로 가는 중
출장이 잦은 남편 덕분에 온종일 혼자 육아하던 나는 텔레비전을 없애고 책으로 거실을 채우고 책을 읽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텔레비전 보다가 소파에서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던 남편의 소중한 공간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아이가 클동안 남편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과 사랑에 빠졌다. 바쁜 회사일에 치여 살고 있으니 가끔 집에 들어오면 동굴에 들어간 사람처럼 꼼짝 안고 유튜브만 보았는데, 그런 그의 삶도 녹녹지 않아 보여 존중해 주었다. 그렇게 아빠는 혼자 방에서, 아이와 나는 거실에서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종이접기 하기를 몇 년, 이런 분위기는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방에 책상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바르게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아이의 방에 초등학생용 책상을 만들어주고 책들을 정리했다. 아이책은 아이방에, 그리고 거실에 있던 많은 책들을 안방으로 옮겨 서재를 만들었다. 그런데 밖으로 보이게 책을 진열했더니 조금씩 쌓여가는 책 먼지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거실에 있을 때보다 방으로 들어오니 책 먼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책들을 먼지로부터 탈출시키고 싶어서 붙박이 장을 짜서 넣고 책 높이 정도의 선반을 칸칸이 만들어 넣었다. 바르게 접어 넣은 옷 대신 그 자리에 책을 꼽았다. 붙박이장이 북 박이장이 된 것이다.
기성품 붙박이로 구입을 했더니 이불장만큼 안으로 깊어서 붙박이 장에 책을 3단으로 넣어 테트리스 하듯 넣었다 뺐다 하며 읽어야 하지만 그 불편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쏙 들어간 책들, 기분이 좋았다.
서재방의 한쪽으로는 붙박이장 다른 한쪽으로는 책장을 두었다. 가운데 커다란 나무 테이블 그리고 화장실, 나는 이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렇게 읽고 쓰고 공부하며 책과 사랑에 빠졌던 나에게 제대로 된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일과 관련된 전문서적이나 시집, 가끔 소설책 몇 권 읽던 삶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된 나는 그림책, 동화를 넘어 자기 계발서부터 고전에 이르기까지 내 책 읽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재가 사라지고 말끔해진 거실에서 남편은 잊고 살던 욕망을 키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자신만의 거실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리클라이너 소파를 구입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침대와 늘 한 몸이었던 남편에게 가장 갖고 싶은 물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더니 TV 없이 살았던 10년이 무색하게 86인치 거대한 텔레비전을 거실에 설치했다. 소파자리에 놓여 거실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8인용에 가까운 거대 나무 식탁 테이블은 텔레비전과 소파에 밀려 안방으로 이사했다.
거실에서 함께 하던 10년을 뒤로하고 우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아이방에, 나는 서재방에, 그리고 남편은 거실 소파 위에. 우리 모두에게 자기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나도 남편도 아이도 스스로 자신만의 방에서 일상을 채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