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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Mar 17. 2023

그래도 다시, 브런치

힘을 빼고 천천히


너무 좋아서 시작했던 일도 하다 보면 그 마음을 잃고 멈추고 싶은 날을 만나기도 한다. 브런치데이, 나에겐 브런치 데이가 그랬다.


쓰는 만큼 비워지고 가벼워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읽을 만한 글을 제대로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자꾸 뒤로 미뤄버리고는 모른척하고 싶어서 수개월동안 쓰지도 않은 것은 당연하고 읽지도 않았다. 쓰지 않는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어김없이 알람이 왔다.


작가님의 글을 지난 66일 동안 보지 못했네요.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270일이 지났어요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그렇게 3개월, 6개월ㅡ

오늘 글을 쓰면서 마지막 글을 찾아보니 자그마치 11개월이 지났다. 이 정도면 쉴 만큼 쉰 거 아닌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블로그와는 또 다른 것 같다면서, 주변 분들에게 같이 글을 쓰자고 함께 브런치 데이를 만들어 인증을 했는데, 나를 제외하고 함께 한 사람들은 꼬박 1년 빼먹지 않고 매주 1회씩 브런치 글을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있을까. 그래서 또 숨었다. 난 못쓰겠다 하면서.


못다 한 숙제를 남겨두고 자는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누가 쓰라고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니고 안 쓴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난 왜 이렇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둘러싸여 사는 걸까?


어떤 글을 쓰지? 새벽에 호기롭게 일어나 데스크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한 시간을 훌쩍 보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다시 다시를 외쳐가면서.


그러다 지난 나의 글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그냥 쓰는 거지.

그냥 쓰기만 해도 좋았잖아.


글을 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난 나의 글을 통해 나 스스로가 더 잘 치유되기 때문인 것 같다. 맞아 나 이랬었지, 그렇게 이겨냈지, 열심히 잘 살았지, 그렇게 지난날의 나를 만나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 일.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일 같았다.


잘 쓰지도 못하면서 잘 쓰겠다는 말도 안 되는 다짐이나 목표를 늘어놓는 일 말고, 이젠 힘들게 돌아왔으니 그저 쓰겠다는 생각으로 매주 브런치데이를 설정해 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열일 뒤로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내 마음속 깊이 들어가 마음에 뒤엉켜 있는 답답한 타래를 술술 풀어꺼내보겠다고 말이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건 이전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이, 습관이, 행동이, 그리하여 생활이,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애리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달라졌던 내 인생을 모른 척했던 11개월, 이젠 당당하게 맞서고 싶다. 대신 힘을 빼고 천천히 돌아와야겠다.


일주일에 한 번!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열어젖힐

나만의 브런치 데이.



이번엔 도망가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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