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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Apr 15. 2022

서로가 다르게 정의하는 열정의 의미


언젠가 남편이 한 말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던 날이 있었다. 무심코 한 말인지 너무 힘들어서 했던 말인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실망감과 믿었던 그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들어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한 남편의 일상은 늘 같은 루틴의 반복으로 이루어졌다. 회사와 집, 일과 휴식 두 가지만 존재하는 그의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등 뒤에서만 서 있는 기분이 들어 늘 외롭다고 생각했던 나는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의 ‘나중에’라는 말에 마지막 남은 희망을 걸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하자.’

‘나중에 잘해줄게.’

‘나중에’

‘시간 되면’


그렇게 나의 기대와 희망에 기다림의 여지를 주는 말만 던지던 그가 갑자기 한 선언 “60까지만 살고 죽고 싶어.”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나의 남편으로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는 그가 어떻게 아내인 내 앞에서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 설사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을 믿고 인생을 걸고 함께 하기로 선택한 아내에게 너무 무책임한 발언은 아닐까 싶었다.


결혼 생활 내내 나와는 늘 다른 곳에 열정을 쏟는 그를 보면서 힘들었었다. 그를 이해하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옳지 못한 생각이었을 텐데 처음엔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어 괴로웠다. 나 스스로도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내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날들이 많은데, 쉽게 배우자를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 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저 그렇겠지 예상하는 것이고 믿어버리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가 생각하는 미래와 내가 생각하는 미래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바라는 그의 미래를 이해하는 것 또한 나에겐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다만 그와 내가 우리를 위해 지켜야 할 예의조차 내려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을 뿐.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늘 열정을 다해 살아간다고 믿었던 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배우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하나 없는 그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삶에 열정이 없고 무기력하며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렸던 것이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 이외엔 휴대폰을 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늘 침대에 누워 지내는 그를 이해하기엔 난 너무 시끄러운 열정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의 선언 이후에 나는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하며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다며 화를 내다가도 많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그럴까 싶어 하며 걱정을 하기까지 나 혼자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그를 바라보며 걱정과 근심을 키워가기 바빴다.


하지만,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러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니 조금씩 그를 향했던 나의 시선과 생각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요란하고 보이는 열정만 대단한 것이라고 착각했었나 보다. 무언가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하며 바쁘게 사는 것만이 열정을 가진 삶이라고 오해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결정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열정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다르게 그 부분들이 드러나 시끄럽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가족을 책임지는 일을 선택했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보다 우리를 위한 곳을 우선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생각하고 바라던 삶의 열정과 그가 생각하는 삶의 열정의 온도가 너무나도 달랐을 뿐이라고.


열정은 뜨겁게 달군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라만 봐도 뜨거운 그것을 
내 안에 넣어두고 평화롭게 다스리는 것이다.

자신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
그것이 열정이다.


김종원 작가의 <인문학적 성장을 위한 8개의 질문>을 들으며 저녁 산책을 했다. 시냇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데 강물은 깊고 깊어 소리 내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열정은 뜨겁게 달군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라만 봐도 뜨거운 그것을 내 안에 넣어두고 평화롭게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묻는 나보다 삶의 힘든 순간에도 자신을 고요하게 유지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남편이 어쩌면 더 대단한 열정을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열정, 하고 싶고 갖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을 내려두고 가족들을 위해 양보하는 열정 말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가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다만 우리 서로가 열정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본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그 자신을 고요하게 유지하며 지키고 있는 그 열정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택을 했으니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위해, 스스로가 일상에서 선택한 감사한 열정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싶을 그날이 있더라도 룰루랄라 자신의 일상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여보, 당신 지금 룰루랄라 당신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거 맞지? 꼭 그랬으면 좋겠어. 꼭.”



#인생 #열정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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