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파업
몸살이 찾아왔다.
버틴 게 용하다 싶을 만큼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 콜록콜록 깊은 기침을 드러내며 기침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에 감기 한 번 잘 걸리지 않지만 1년에 1번 정도 호되게 앓는 남편에게 기침감기가 찾아왔다.
며칠을 퇴근하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어도 소용이 없었는지 기침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바로 병원에 다녀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은 좀처럼 병원에 가지 않는다. 약은 엄청 잘 챙겨 먹으면서 말이다. 말 안 듣는 고등학생 아들처럼 참 힘겹게 한다.
기침은 남편으로부터 시작되어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잘 먹고 잘 자고 평소 줄넘기와 축구로 운동도 열심히 하는 아이여서 크게 걱정을 안 했는데 6학년이 되고 과중이 된 학업 스케줄에 아이도 조금 지쳐있었는지 고스란히 물려받아 호되게 기침감기를 앓았다.
이쯤 되면 나에게 올 차례가 되었다 싶었다. 두 남자 뒤치다꺼리 다 했으니 올 때가 되었겠지 하고 말이다. 코로나 때도 그렇게 우리 집을 뒤흔들고 나에게 마지막으로 머물다 가더니 기침감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날까지 많은 양의 일을 소화했지만 잘 먹고 잘 잤는데, 아침부터 몸이 예사롭지 않았다. 묵직한 무언가가 목에 꽉 끼어있는 듯하더니 급기야 참기 힘든 두통이 함께 찾아왔다.
고통스러워 새벽에 깬 나는 눈을 뜨자마자 타이레놀을 두 알 먹고 바로 뻗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정신력으로 일어나 아이를 준비시켜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고 주스 갈아 남편 챙겨주고 나니 두통이 더 심해져서 욱신 욱신 머리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아프니까 그냥 쓰러져 있어도 되었을 것을, 꾸역꾸역 일어나 아침상을 차렸다. 그러니 가족들이 알턱이 있나. 다 내 잘못이다.
신청해 둔 자격증 공부가 있고, 해야 할 일이 가득인데 아프다니 너무 속이 상했다. 남편은 회사 다녀오면 먹고 바로 자고 아이도 말할 것도 없이 늘 엄마인 내가 챙겨주지만 난 아파도 아무도 챙겨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나 혼자 아프고 나 혼자 밥 챙겨 먹고 나 혼자 병원에 가고 심지어 가족들 식사까지 챙겨야 한다는 게 너무 서러웠다.
다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왜 해놓고 더 서러워하느냐는
것이다.
병원에 다녀오고 약을 먹고 자다 알람 맞추고 일어나 일하고 또 바로 잠자리에 들기를 반복했다. 이틀 꼬박 눕다 깨다를 반복하고 보니 어제보단 조금 가벼워진 두통에 숨이 쉬어졌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오후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난 왜 이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사는 걸까? 그냥 아파서 못한다는 말 한마디면 불편해도 그들이 다 알아서 할 텐데 말이다. 오늘, 학원 다녀와서 바로 저녁 먹고 나갈 아이를 위해 급하게 김밥을 쌌다. 싸는 김에 남편 것까지 싸놨는데 “ 퇴근길에 치킨 먹고 싶어서 시켰어.”한다. 아프다고 안 했어도 아무 일 없었을 텐데 아, 난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엄마는 왜 맨날 그렇게 살아.”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남편과 자식들 걱정하느라 바쁘게 사는 엄마를 보며 답답 답하다고 뭐라고 하던 내가 떠올랐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엄마를 닮아있는 나를 보니 스르르 이해가 되었다. 자신보다 더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서 그렇게 해주셨겠지만 그래도 늘 외로우셨겠다 싶었다. 알아주길 알고 도와주길 얼마나 바라셨을까.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겠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살고 있는 내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물들어 버린 유전자처럼 단단한 삶의 태도.
수학학원에 갔던 아이가 웬일인지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인가 급히 다시 걸었더니 학교에서 무리를 했는지 다리가 아파서 오늘 운동 가기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봐도 오버연기 하는 모습으로 절뚝이며 들어온 아이가 다리가 너무 아파 오늘은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했다. 그럼 조금 쉬고 저녁 먹으라고 했더니 10분쯤 지났나 오늘 운동을 못 갔으니 집에서라도 스포츠를 해야겠다며 닌텐도 스포츠팩을 열었다.
오늘따라 가기 싫었는지 평소 꾀도 내지 않던 아이가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머리 쓰고 행동한 게 귀여워서 모른 척했다. 다리 아프다더니 폴짝폴짝 뛰면서 축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하길래 “이제 다 나았나 보네.” 하니까 “아 아 아픈데 참고하는 거야.” 한다.
그래, 넌 꾀도 부리고 쉬기도 하면서 네 마음 다 표현하고 살아. 그래도 돼. 엄마도 이젠 그렇게 살 거야.
아픈 날은 밥 안 할래.
이제부터 파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