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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May 30. 2023

엄마, 오늘은 슬프지 않은 걸로 부탁해

자존감 충전

왜 잘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 일을 하세요?
책 읽기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너무 어렵지 않나요?


처음 고전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배우고 익힐 때,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출근했을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전했을 때,

열심히 살아온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못하는 것, 하기 힘들어하는 일만 지적하기 전에

아이의 강점에 집중하고

아이가 잘 해낸 일, 해내려고 애쓰고 있는 일,

잘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그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영어를 가르칠 때는 그럴 수 없었다.

빨리 아웃풋이 나와야 하는 수업,

잘하면 큰 대형학원으로 옮겨 결국 성적을 내야 하는 과목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지쳐있었고,

앞으로 내가 더 즐거워하며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아이와 평생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너머 일상에서 있었던 일,

친구 관계, 학교 생활, 고민 등을

이야기 나누며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서로 생각이 다르고 그 생각의 차이가 커지면

아무리 대화하려고 애써도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청소년기가 오면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말문을 닫아버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내가 했던 위험한 도전은

아이와 함께 수업을 하는 일이었다.

그 도전은 여전히 어렵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길 정말 잘했고,

평생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영어수업을 하다가 망한 적도 있고,

무언가 하려는 의도를 들키면 얼른 달아나버리는 아이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고전독서 수업을 시작하고 3년,

아이와 나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래서 과감하게 영어 수업을 모두 그만두고

난 고전독서지도사가 되기로 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만 했던

내가 변하자 아이는 저절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좋은 책을 읽고 같이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 된 우리는

서로 좋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나누기 시작했고,

그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할 거리가 늘어나면서

자동적으로 더 가까워졌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 꼭 수업해야 해?”

“책 읽기 너무 힘들어.”

“그냥 읽으면 되지, 꼭 읽고 글을 써야 해?”


”그럴 거면 수업 듣지 마!”

“억지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엄마 실망할까 봐 하는 거야. 사실 별로 재미없어.”


“엄마 때문이면 함께 할 필요 없어. 다음 주부터 들어오지 마.”


지금이야 몇 문장으로 지나치지만 그땐 진짜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기를 잘 건너오고 나니

꿈에도 그리던 일들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다.



“오늘 학교 수업시간에 소나기 읽었어.

영상도 봤어. 고전 수업 때 읽었다고 발표했어. 반갑더라.”


“엄마 책 좀 추천해 줘. 오늘 학교 가지고 가서 읽으려고.

수업도서는 벌써 다 읽었어.

재미있는 책 없어?”


“엄마, 어제 엄마가 추천해 준 책은 너무 슬펐어.

학교에서 읽다가 눈물 날 뻔해서 얼른 덮었잖아.”


“지난주에 내가 읽었던 책, 오늘 00도 읽고 있더라.

내가 재미있다고 했더니 샀대.

엄마, 또 추천해 줄 책 없어?”


”엄마, 마음이 답답해. 진짜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냥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면 좋겠다.

마음이 안 좋아.”


학년이 올라가면서 스포츠만 사랑하게 된 아이

더 이상 같이 그림 그리고 오리고 붙이던

꼬꼬마 아들이 아니었다.

야구공 던져주고 배드민턴 잘 춰줘야 좋아하는데

애써 같이 해줘도 제대로 못 쳐줘서

엄마랑 하는 게 재미없다고 하니

이렇게 점점 어른 남자가 되어가는 아이와

멀어지긴 싫었다.


같이 스포츠를 즐기고 뛰어다닐 순 없어도

함께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공의 행동, 마음에 들지 않는 설정,

등장인물이야기에 푹 빠져

소설인지 실제인지 모르고 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이는 오늘도

바쁘게 아침을 먹고 후다닥 뛰어들어와

엄마의 책장을 연다.

“엄마, 오늘은 슬프지 않은 걸로 부탁해.

재미있는 소설 생각나는 제목 없어?

내가 꺼내갈게.”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아도

적어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이자 엄마로 평온한 오늘이

나에겐 가장 큰 선물이자 수확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가 옳다고 믿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기억해 본다.


새벽부터 무너져 버린 자존감

아이의 한 마디에 추켜 세워본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줄 수는 없겠지만

잘 살기 위해 제대로 살기 위해 고민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적어도 내 아이는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좋겠다.


결과와 성과로 말하는 사람 말고,

보이지 않는 내면과 상대의 애씀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말까를 고민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누고 또 나누면서 자신도 성장하고

다른 사람의 성장도 돕는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삶의 태도를 본으로  보이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날아오는 화살에도 끄떡없이 나를 지키는 힘이 단단한

내면이 깊은 우리가 되길.


+

엄마의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이 되어주어 고마워.

엄마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고마운 아들이 되어주어서 더더 고마워.

앞으로 네가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되고 지지를 해주는

그런 엄마가 될게.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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