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썸머 Jun 24. 2023

내 시간을 빼앗은 너 일지라도

너와 나의 미라클 모닝


살아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새벽 5시면 울리는 알람, 단 번에 눈을 떴다.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 독서하는 시간이 꿀처럼 달콤했다.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 그 시간은 마치 데이트하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책 속에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평소 근사하다고 믿었던 행동들을 삶으로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가꾸고 채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실에선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도 이렇게 하면 조금 닮아갈 수 있을까 꿈꾸고 싶었다.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남몰래 책 속의 남자들과 남편을 비교하다 보니 현실에서 살고 있는 남편이 유독 작고 초라해 보였다. 책 속에서 만나는 근사한 남자들이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모르던 세상에 눈을 뜨고 새로운 맛을 봐버린 사람처럼 평소 내가 누리고 즐기던 삶인데도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지곤 했다.


책 속의 삶은 내가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사색하고 그들이 소개한 또 다른 책을 찾아 읽는 즐거움, 마치 모르던 나라를 탐험하듯 여행을 떠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기분 같은 것이었다.


매일 바쁘다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고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 두 시간씩 책을 읽다 보니 처음엔 한 달에 2-3권, 그다음엔 일주일에 한 권 그리고 하루에 한 권을 읽을 정도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 일어야 하는 책들이 늘어났다.


새벽에 두 시간 꼬박 책을 읽고 아침 준비를 했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느껴질 만큼 그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하루 중 여러 시간 동안 틈틈이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나는 책과 사랑에 빠졌다. 너무 과하다 생각될 만큼.


새벽기상을 하고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수면습관이었다. 배드타임 스토리를 들려주고 아이가 잠들면 조용히 나와 블로그를 쓰거나 이것저것 찾아보며 내 시간을 가지려고 하면 어김없이 아이가 깨서 울며 곁으로 다가왔다. 다시 들어가서 재우려고 하면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스물스물 화가 나서  짜증을 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새벽기상을 하고나서부터 아이에게 잠자리 독서를 해준다고 곁에 누워 읽어주다가 곯아떨어지기를 여러 날, 결국 몇 권의 책을 읽어주다 같이 잠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아이도 깨지 않고 푹 잠이 들었다. 불면증이 심하던 나도 오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달콤함도 잠시 엄마인 나를 닮아 원래 잠이 없던 아이는 엄마의 기상이 빨라지자 자연스럽게 이른 아침을 맞았다. 5시부터 일어나 초집중하며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6시도 안 되어 일어난 아이가 곁으로 와서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침대에서 뒹굴도 물고 빨고 하길 바랐을 텐데 순간 나는 일찍 일어나서 나의 꿀 같은 시간을 방해하는 아이가 밉기도 했다.


“조금 더 자지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


계획한 대로 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에 30분 기상 시간을 앞당겼다. 하지만 아이는 이에 질세라 더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 정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다. 언제나 자신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남편이 더더욱 미워지기도 했다.



“굿모닝! 잘 잤어?”


웃으며 맞이해야 하는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를 보고 화낼 일인가? 문득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 쪘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나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가 일찍 일어나 곁에 없으니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아이를 원망할 순 없었다. 엄마품이 그리워 잠 깰 때까지 곁에 있고 싶은 아이, 아이가 눈을 떠서 곁에 와서 비비고 칭얼대면 아이를 안고 소파로 갔다. 몇 시에 일어나든 이른 아침을 맞는 아이에게도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아이에게 읽어줄 동화책으로 바꿔 들었다. 눈도 안 떠지지만 엄마 무릎에 누워있고 싶어서 새벽부터 눈을 뜬 아이에게 성실하게 열정을 다해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하는 것엔 자신 있다고 외치기라도 하는 듯이.


작가의 이전글 바퀴없는 자전거를 구르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