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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Apr 19. 2024

선택 다음 또 선택

암진단을 받고 나서

벼랑 끝 인생의 전환점에서 내가 가장 크고 세게 배운 것은 선택에 대한 중압감이었다. 우리는 늘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살아가지만 그 선택 이후에 따라오는 결과의 중요도에 따라 선택의 무게는 달라지는 것 같다. 후회하고 또다시 할 수 있는 일들이라면 거뜬히 용기 내어 도전하고 마는 성격이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12월, 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스케줄이 잡힌 곳은 국립암센터였다.

     

2주 만에 첫 진료, 그것도 주변에선 기적이라고 할 만큼 빨리잡힌 행운이라고 했다. 국가 건강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연말이 되면 유독 북적거리듯,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도 배가 되어 병원을 꽉 채우기 때문이라고. 서울 5대 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가고 싶었던 두 병원은 가장 빠른 예약이 4월이라고 했다. 그런 곳은 패스하고 혹시 몰라 1월 말, 2월 초에 잡힌 두 곳에도 예약을 걸어두고 암센터에서 검사를 시작했다.    

 

작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는 지인의 조언을 따라 병원과 의사 선생님을 추천받았다. 지인은 전화를 끊는 목소리 뒤로 “그래도 직접 진료받고 느끼는 환자 본인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정작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다림과 검사 기다림과 검사를 반복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을 대면하는 것은 보통 5분 남짓이다. 그 5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앞에 앉아 계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최대한 귀 기울여 듣고 신뢰하는 것뿐이었으니까. 들고 간 조직검사 결과표와 손으로 직접 부위를 만져보며 잠시 검진을 한 후 더 정밀한 검사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받고 나오는 동안 의사 선생님이 참 친절하시구나, 베테랑 이시구나 하는 짧은 소견만 생겼을 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가 환자가 되기 전에는 몰랐지만 암 환자가 되고 나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유경험자가 되어 수많은 메시지를 전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더라. 아는 언니가, 친정엄마, 시어머님이, 사촌언니가 유방암이었는데......     

자세한 진단이나 치료 방향이 결정되기 전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불안과 공포로 나를 사로잡을까 봐 두려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 담아 듣지 않았다. 유방암 환우들이 모여있는 카페에 가입을 하거나 후기들을 찾아보지도 않았다. 수술을 마치고 아프다는 말들을 들으면 잠을 자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평소 생각이 많은 내 성격을 고려할 때 너무 많이 알고 생각하면 오히려 해가 될 것만 같은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치료를 하고 난 사람들의 이야기의 상당수는 나였다면 다른 병원도 가보겠다, 복원을 하겠다 말겠다 하는 후회를 가득 담고 있었다.


검사가 시작되고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유방암은 가장 먼저 뼈나 폐로 전이되기 때문에 뼈스캔 검사와 폐 CT, MRI검사가 병행되었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신없이 일상을 정리하며 다가오는 날짜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면 더 힘들 것 같아서 해오던 일들을 착오 없이 잘 마무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예약해 놓은 대형병원에 수시로 전화를 해서 취소 일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예약을 앞당겨 보려고 애썼고, 다행히 멀지 않은 날짜에 초진 진료가 잡혀서 삼성서울병원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검사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날, 갑자기 하루가 미뤄지면서 다학제 상담 일정이 잡혔다. 유방외과 선생님과만 결과를 듣는 것이 아니라 혈액종양내과, 초음파 선생님 모두 모여 함께 앞으로의 진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뭔가 간단한 것은 아니구나 싶어 마음 졸이며 하루를 더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선 다학제 상담실에서 각 진료과 의사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단을 하고 치료 결정을 논의했다. 암으로 보이는 한 군데 종양 말고도 미세하게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는 말씀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반대쪽도 재검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선 항암 먼저 시작하고 수술을 하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이었다. 문제는 해당일이 앞당겨 놓은 서울 대학병원의 초진 이후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날과 동일한 날이었다는 것이다.     


암 진단을 받고 처음 5분 선생님을 만났고, 두 번째 많은 선생님들이 모여계신 자리에서 검사 결과를 들었다. 이제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처지에 항암을 하고 수술을 할지, 다른 병원도 가볼지, 지금의 이 선택이 최선일지 결정을 내리는데 주어진 시간은 5분 정도였다. 뒤로 줄 서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오늘 당장 추가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 극도로 두려웠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적으로 내 일이고 내 병이고 내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두렵고 무서웠다. 내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병원을 옮길 수도 치료 방향이 바뀔 수도, 또 몇 주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누가 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 줄 사람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5분 동안 벽에 기대고 차분하게 생각했다. 두렵더라도 조금 찾아보고 준비할 걸, 마음의 준비를 위한 정도의 정보라도 서치하고 올 걸 하는 마음과 함께 작은 후회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아서 서울 병원행을 택했다. 어쩌면 다시 이곳으로 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좀 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황해하는 간호사 선생님을 뒤로하고 추가 검사를 하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숨고를 새도 없이 서울로 향했다. 선택한 일엔 후회하지 말자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봤지만 반대편 마음 구석에선 여전히 ‘잘한 일일까?’ 싶은 물음표가 수도 없이 툭툭 솟아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첫 선택에 대한 다음 스텝은 또 가늠하기 힘든 거대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선택들이 모두 모여 버튼을 들고 자신을 눌러달라 소리치기라도 하듯, 내 목숨을 두고 해야 하는 무섭고 위험한 선택들이 매일매일 가득한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해야 하는 선택의 무게에 눌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선택 다음엔 또 선택, 그리고 기다리는 다음 선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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