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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래 May 20. 2019

지금 많이 불안하세요?


독립서점, 동네 책방, 동네 서점을 직접 찾아올 만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대부분 책방을 찾는 손님들은 이미 출판을 한 제작자 이거나 미래의 독립출판 계획을 가진 계획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제가 독립출판을 꿈꾸며 무시무시하게 가팔랐던 산복도로 지옥의 계단을 올랐던 것처럼요.


그런 날들이 더러 있습니다.

손님 0명, 매출 0원.

가끔 월요일이 그랬고, 가끔 날이 흐리면 그랬고, 비가 오면 더더욱 손님이 오질 않아요.


나는 대부분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이럴 땐 내가 책이라고 한 권을 사서 사장님들의 기를 세워줘야 하나 고민 고민하며 터덜터덜 힘없는 마감을 하곤 했습니다. 사장님들 대체 이 돈 안 되는 책방 왜 하시는 거지...


다행히 책방은 온천천 옆 도로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을 하다, 아니면 달리기를 하다 힘들어 고개를 쳐들면 딱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산책을 하다 이 곳을 발견하고 신기해서 들어오시는 손님이 가끔 있습니다.


수요일이었던 어느 날, 그 날은 조금 흐렸고, 손님이 올 조짐이 없었고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대로 손님 0명으로 마감할 것인가 허탈해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멀쩡한 척하면서 멀쩡하지 않은 상상을 하는 날이었답니다. 그때 저의 정신을 차리게 한 손님을 알리는 청명한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줄여놓은 음악 볼륨을 조금 올리고 손님이 어느 정도 책 구경을 했다 싶을 때 나는 내 성격대로 손님과 낯을 가리며 가만히 있느냐, 아니면 궁금증을 해소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있다 낯가림보다는 궁금증이 앞서 손님에게 물었습니다. 왜냐면 책방의 커다란 창문에 비춰 책을 고르는 손님의 모습을 살짝보았는데 손님이 들었다가 내려놓는 책들이 전부 범상치 않았거든요. 내 취향과 아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 혹시 저... 책방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그 손님은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아, 산책하다 우연히 보기기에 들어왔는데 이 동네 살면서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지 몰랐네요. 요즘에 이런 책방이 부산에도 많이 생겨서 너무 좋네요"


"그쵸?! 저도 좋아요. 대형서점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구석구석 숨어있는 독립서점들 일부러 찾아가는 편이거든요! 혹시 독립출판물 제작 같은 거 하셨나요?"


"아뇨, 저는 사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부산에서 내려와 카페 하다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데 카페 할 때 단골손님들이 가끔 책 스-윽 내밀면서 책 만들었다고 주시곤 했어요."


"아, 프리랜서로 일하고 계시는구나. 저도 예전에 프리랜서로 일했었는데 그때는 고용이 안정된 프리랜서였는데 지금은 완전 어디에 계약된 것이 아닌 프리타족으로 살고 있거든요. 이렇게 알바만 두 탕 뛰는 생활은 처음이고, 물론 업무 만족도는 좋긴 한데..."


나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분은 연신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금 많이 불안하세요?"


"네? 하하. 하하하."


이제껏 스스로 프리타 족의 삶이 너무도 만족스럽다며 떠들곤 했었는데 이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여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오전 9시에서 6시까지 시간을 상사가 시킨 일, 나에게 주어진 일만큼의 양만 해내면 지금 월급의 2배가 나오던 삶. 하지만 너무나 재미가 없고 지루했던 삶. 지금은 그와 똑같은 시간만큼의 일은 하지만 손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삶.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삶. 나는 후자를 택했습니다만 통장에 찍히는 돈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연구소 행정 일과,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책방 사정을 생각하면 불안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 손님은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생활을 택한 이상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오늘도 프리타족으로 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말을 해주는 손님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나는 기분이 들떠 손님에게 내가 쓴 책을 추천해주었습니다. 손님은 내 책을 보더니 공감하며


"이 말이 너무 공감되네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지만 걱정이 많아 늘 가방 무거운 맥시멀리스트"


나는 손님이 내 책을 내 앞에서 보는 것이 몹시 부끄러워 아, 괜히 내 책을 소개했다고 생각하며 손님이 책을 볼 동안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손님은 책방 문 닫기 15분 전 책을 하나 골라 카운터로 오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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