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예술? 밥벌이? 다 똑같은 마음이야.
늦은 퇴근하고 묵은지 족발탕에 소주를 한 잔 했다.
고마 쥑이네! 기분 조오타!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박화요비 - 그런 일은>
https://www.youtube.com/watch?v=brM5QZvBl3Y
죈 종일 숫자와 싸우고 도자기 더미에 치이다 보니 두통이 왔다.
불량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공정이 많아서 그런가 어디 한쪽이라도 잘못되면 그릇이 망가져버린다.
진짜 이놈의 도자기.. 어렵다...
한숨을 푹 쉬고는 지쳐 쭈그러든 허리를 붙잡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뭉글뭉글 고민이 피어오른다.
꿈꾸던 대로 도자기에 가까이 머물며 밥 벌이 하고 있는 것에 대부분 감사함을 느끼지만,
사실 이런 근로 환경을 생각하고 이곳으로 이주한 건 아니었다.
상상 속의 도예 일은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
그런 풍경이 펼쳐진 촌동네에서 손에 흙 마를 새 없이 지겹도록 물레를 돌리며 기물을 빚어내는,
그런 하루하루를 상상했었다.
물론 난 손재주도 없고 익힌 기술도 없었어서 그런 곳에서 나를 써줄 일은 없겠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내 예상과 맞아떨어진 건 촌동네라는 것 하나.
내가 일하는 이곳은 양산형 (대량생산) 도자기 작업장이다.
그렇다고 천 원 샵에서 파는 외산 그릇 정도 감성의 식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브랜드 작가이자 사장님인 푸바오의 특유의 선과 *유약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유약 - 도자기 제조 과정에서 광택, 색 및 질감 개선을 위해 기물 표면에 바르는 물질. 출처_위키백과)
처음부터 이렇게 양산형 사업을 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도자기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과 대학원 역시 자연스럽게 관련 학과에서 졸업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10년이 조금 넘으셨는데,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공정을 직접 손을 통해 만들어 판매하셨단다.
'작가 그릇'이라는 자부심을 위해 밤낮없이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면서도 여의치 않을 땐 종종 인력사무소나 지인의 일을 도우며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10년쯤 했을까, 한계가 찾아왔다고 했다.
몸이 망가지는 건 둘째 치고, 감사하게도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판매처와 식당을 상대로 도매 거래 기회가 생겼단다.
그때 거래처가 요구하는 생산 수량을 맞출 능력이 없어 그냥 그렇게 수익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잦아졌고,
결정적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은 쑥쑥 자라는데 아버지 된 도리로 어찌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고수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점점 사업 규모에 맞게 양산형 작업장으로 변모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양산형 작업장이라고 해서 사람 손이 쓰이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공정이 대부분이다.)
아휴. 어떤 예술인이 자신의 창작물이 가치 높은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림 하나 뚝딱 그려서 1년 먹고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자란 나 역시 내 사업을 하게 된다면 양산보다는 소량 생산을 위한 작업을 하고 싶다.
그러다 현실에 치이면 나라고 뭐 달라지겠는가..
(아냐! 달라지기 위해서! 목표를 차근차근 달성해 가면서!
반드시 글쓰기로도 수익을 내야 한다!! 환상의 투트랙 작전을 성공시키는 거야!
이 놈의 공동구매, 프로모션 다 지긋지긋하고 싫단 말이다!)
그렇게 늦은 밤 족발탕을 들이키며 푸바오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참 많은 걸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감각적인 예술가가 되어야 하기도 하고..
이 아저씨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을까.
나야 지금 단신으로 살면서 내 밥그릇이나 신경 쓰면서 살아가면 된다만..
(해가 지날수록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미어지긴 한다..)
이 눈물 나는 피로사회를 어찌해야 하나..
정신 바짝 차리라 돌멩아..
월급 얘기 나올 때마다 '이것뿐이라 미안해.. 좀 만 기다려보자.' 라며 위로하는 고용주님.
주말엔 30만 원짜리 모델링 수업도 자비로 듣게 해 주고, 일과가 끝난 후엔 물레 차는 법도 알려주는 선생님.
가끔 둔해 보이다가도 물레 앞에서는 '장판파의 장비'처럼 흙을 가지고 노는 섹시남.
가르쳐주신 은혜 꼭꼭 소화시키고 물레 연습 열심히 해서 사업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내일은 국가대표 축구하니까.. 칼퇴하겠습니다 ㅋ_ㅋ )
파이팅입니다! 작가님! 족발탕 잘 묵었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