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맥가이버의 전언(傳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벌써 11월이 코 앞이라니.
내일 아침엔 꼭 책을 읽어야지.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RN2uB2KhNKk
<Relax Your Mind>
갑작스레 정해진 어느 금요일의 작업장 회식 날.
푸바오의 전 직원 식사 대접의 이유는 '높은 불량률' 때문이었다.
메뉴는 요 근방에서 유명하다는 오래된 오리집. 부리나케 일을 마치고 식사 장소로 향했다.
몇몇 이모님들은 맥주를 조금 마시고
한쪽에서는 공장장인 맥가이버와 헛기침 아재가 대작을 하며 소주를 드셨다.
푸바오와 술 좋아하는 돌멩 실장은 연거푸 액상과당을 마셨다.
푸바오는 술을 끊은 지 오래되었고
나는 간밤에 흑백요리사를 보다가 배고픔에 못 이겨
전자레인지에 만두를 돌려먹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입이 터진 나는 그 길로 편의점에 달려갔다.
그리곤 할인 중인 닭다리와 소주를 '조금' 사서 준비된 질펀한 야식들을 즐겼다.
(참으로 지독한 폭식증. 아이구 인간아..)
그 일로 하루 종일 속이 부대껴있었기 때문에 왠지 술을 먹고 싶지가 않았다.
이모님들을 댁에 모셔다 드리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음주 권유를 거절한 것도 있다.
딱 보아하니 운전할 사람이 부족해 보였으므로.
한창 대작 중인 작업장 남자들은 오늘이 날인 듯 소주를 드셨다.
처음 보는 선생님들의 모습이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다 같이 조금 더 노력해 보자.'라는 푸바오의 말을 끝으로 갑작스러운 회식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차가워진 날씨 탓에 다들 겉옷들을 고쳐 입고 밖으로 나와 갈 준비를 하는데
얼큰하게 취해버린 맥가이버와 헛기침 아재는 뭔가 아쉬우신 듯 차에 타지 않고 계셨다.
- 좀 더 드시려나 본데?
푸바오가 말했다.
- 저도.. 2차 갈래요.
- 그래? 전화할게. 집에 차 대고 와.
목적지에 따라 돌아가는 차 편이 갈라지고 작업장 식구들은 차 안으로 이동했다.
나는 못내 아쉬웠나 보다.
속 깊은 얘기는 제쳐두고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알코올이 필요한 '소통 꽝'이라,
이번이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다 싶어 2차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동네 조그만 선술집에서 다시 만난 남자 넷.
푸바오는 가맛불을 보러 잠깐 있다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갔고,
남은 사람은 맥가이버와 헛기침 아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었다.
미지근한 맥주를 조금 마시자 금방 달아오른 나는 두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먹태를 씹으며 이 집은 신기할 정도로 맛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쯤 맥가이버가 말씀하셨다.
그리곤 본인이 모든 걸 다 전수할 테니 너희가 사장 잘 보필해서 잘 꾸려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는 생각했다.
주어진 일들 뿐만 아니라 필요한 기술들을
내가 목말라하며 찾아서 숙달해야겠다는 것.
내가 푸바오 아들인양 이 브랜드를 이어가야 하는 부담을 가진 것도 아니다만
그저 날 받아준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 자그마한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맥가이버는 곧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전해 듣기로는 무릎이 좋지 않으시다고.
어느 날 자기 집 앞 반지하 공방에 자리를 잡고
낮이든 밤이든, 심지어 새벽이든.
항상 불이 켜져 있는 작업장 속 가련한 젊은 흙쟁이를 마주하고는
마음이 쓰여 이것저것 도와주던.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맥가이버와 푸바오.
원래 '봄가을에 가맛불이 말썽'이라며 털털한 웃음으로 푸바오를 위로하던 사람.
40년을 투신한 고된 요업 인생에도 항상 흥이 넘치는 유쾌한 사람.
진정으로 소망하건대, 가볍지 않은 그 수술이 무탈하게 잘 끝나서
우리 곁에 오랫동안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공장장님과 소주 한 잔 더.
꼴깍.
기울이고 싶다.
*사진 출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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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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