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자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글
얼마 전 친구와 서울숲 재즈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연이 하루종일 진행되는 페스티벌이었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놓고 음악을 듣다가 수다를 떨다가 누워서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음악을 들었다. 오전 공연이 끝났을 때, 우리는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쏟아지는 식곤증을 견디지 못하고 돗자리에 누웠다. 친구는 잠시 눈 좀 붙이자고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그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주변이 딱히 시끄럽지도 않았는데 잠들지 못했다. 얼마 후 공연이 다시 시작됐다. 우리가 잡은 자리는 무대와 아주 가까워서 드럼, 기타, 피아노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누구라도 화들짝 놀라서 일어날 굉음이었다. 이제 일어나자고 말할까 싶어 친구를 슬쩍 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곤히 자고 있었다. '이렇게 소리가 큰데 안 깼다고?' 아기처럼 평온하게 잠든 친구를 보고 느낀 감정은 신기하다, 놀랍다가 아닌 부럽다였다.
나는 그당시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밤마다 유튜브에서 10분 만에 잠드는 음악을 틀어놓고 100분을 듣고 있었다. 겨우 잠들었다가도 언니가 새벽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도어록을 여는 삐 소리가 귀에 화살처럼 꽂혀 화들짝 깼다. 재즈페스티벌 전날도 밤을 새웠다. 그 와중에 식곤증이 떼로 몰려와서 자라고 멱살을 잡았는데 1시간도 제대로 눈을 못 붙인 것이다.
나에게도 머리만 대면 잠들던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 갔던 고깃집에서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방석 두 개를 붙여 몸을 동그랗게 말아 잠들곤 했다. 수능 때문에 머리가 아프던 고3 시절에도 스트레스는 많았지만 그럭저럭 잘 잤다. 그때는 수면욕이 식욕을 이길 정도로 세서 배가 고플 때도 배의 통증을 무시하고 잤다. 거실에서 엄마가 TV소리를 높여도 무시가 됐다. 아마 20대 초반의 나라면 얼마 전 재즈 페스티벌에서 곤히 잠들던 친구를 보고 아무 생각이 없었을 거다. 나라도 그렇게 정신없이 잠들었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식욕이 수면욕을 이겨버린다. 외부의 작은 소음이나 인기척에도 화들짝 잠이 깨버린다. 조금이라도 배가 고프거나 몸이 덥거나 주변에 밝은 빛이 있거나, 외부 소음이 들리면 절대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어느 날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덜컥 우울해졌다. 나는 언제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 됐을까?
원래 나는 "불면증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해를 못 했다. 불면증이란 걸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불과 1년 전 얘기다. 나는 서른 살 중반부터 지독하게 불면증과 엮였다. 내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명확하다. 괴로운 일이 있었고, 자려고 누웠을 때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끊어야 잠들 수 있는데, 끊어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젠 내가 마지막으로 걱정 없이 잠들던 게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린 것처럼 무섭고 허망한 일이다.
오래전부터 심한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고백한 아이유도 '내가 마지막으로 아무 걱정 없이 스르륵 잠든 게 언제였더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잠들었을 때였고, 그렇게 나온 노래가 <무릎>이다. 불면증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 나만큼 아이유에게 잠은 지독한 고민이었던 것 같다. 잠을 못 자게 되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숙면을 빌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밤편지>라는 노래까지 내게 됐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나는 두 노래가 처음 듣는 노래처럼 들렸다. 뜬 눈으로 고요한 밤을 깨어있는 기분이 얼마나 고통인지 알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숙면을 빌어주고 싶다는 말은 거의 프러포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몇 배의 위로와 감동으로 들린다.
내가 불면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재즈페스티벌을 다녀오던 즈음부터다. 처음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대치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냥 무작정 잠들려고 했다. 그렇게 밤을 새우는 날이 하루 이틀 계속 늘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머리는 종이 울리는 듯 띵하고 얼굴은 퀭하고 가슴은 헛헛했다. 동이 트고 있는 창밖을 보고 있자니 단전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처음에는 몸을 피곤하게 만들면 잠들지 않을까 싶어서 회사 일에 매진했다. 회사 동료,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며 정신없이 일주일을 꽉 채웠다. 매일 집에 올 때마다 녹초가 됐다. 여기까지는 성공. 그런데 막상 누우면 눈이 말똥말똥했다. 몸은 자고 싶어 죽겠다고 소리 지르는데, 절대 잠들지 못하는 괴이한 경험이었다. 어쩌다 운 좋게 잠들어도 새벽에 2~3번은 기본으로 깼다. 한 시간 간격으로 깬 적도 있다. 그러니까 잠에 들어도 절대 깊이 잠들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내 몸의 한계를 느끼고 나니 한 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자주 깨도 좋으니 30분 안에 잠들고 싶었다. 그런데 실상 잠드는 데 2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다 보니 아예 눕는 시간을 앞당겨버렸다. 9시에는 무조건 침대에 누웠다. 심할 때는 8시에 눕기도 했다. 가장 억울한 건 8시에 누웠는데도 12시가 넘도록 깨어있을 때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8시부터 12시까지 '생각'하느라 잠을 못 들었다는 얘기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묻는다면 굳이 글로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아주 가까운 최근 일부터 한 달 전, 1년 전의 일까지 곱씹는다.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 데부터 시작한다. 도대체 왜? 마음에 안 들어, 아 내일 예약할 거 있었지 참 하며 맥락을 넘나 든다.
생각의 허리를 잘라야 했다. 유튜브에 생각 멈추는 법, 생각이 너무 많을 때 등을 검색했다. 의사 사진이 붙어있는 썸네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용인즉슨 항우울제를 먹으라는 거였다. 항우울제의 특정 성분이 생각의 고리를 끊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바로 다음날 회사 근처의 정신과를 찾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우울증 중등도 판정을 받았고,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약을 먹고 1주일은 신기하게 잠을 잘 잤다. 그런데 그다음 주부터는 효과가 없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유튜브에서 10분 안에 곯아떨어진다는 영상을 틀었다. 10분 안에 잠들지 않으면 다른 비슷한 제목의 영상을 틀었다. 그렇게 계속 돌려 듣다가 기적적으로 잠들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불면증과 이별하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은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중간에 한 번은 일본여행을 갔는데, 드럭스토어에서 수면개선유도제로 유명하다는 의약품을 사 와 먹기도 했다.(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리엘이라는 약인데 생각보다 정말 효과가 좋다. 추천.) 내성이 생기면 안 되니까, 다른 방법을 함께 찾았다. 컬러테라피 공부를 하다가 불면증에 국화차가 좋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자수정이 불면증, 스트레스해소에 좋다는 것도. 더 나아가 온갖 의학 영향을 찾아보다 불면증의 원인을 해결하려면 마그네슘을 제대로 섭취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날 내 오픈마켓 장바구니엔 국화차 한 통과 마그네슘 한 통, 자수정 스톤이 담겼다. 매일 꼬박꼬박 마그네슘 한 알을 먹었고 낮에 국화차를 진하게 우려 마셨다. 머리맡엔 자수정을 두고 잠을 청했다.
웃기고 눈물겨운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몸도 마음도 지친 걸까. 불면증이 내 노력을 보고 백기라도 들었는지 요즘은 ASMR을 듣지 않고도, 국화차를 마시지 않고도, 내 몸을 굳이 피곤하게 만들지 않고도 30분 안에 잠든다. 물론 매일은 아니고 가끔씩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잠을 설칠 것을 대비해 9시에 눕는다. 그러니까 하루 8시간 이상 푹(?) 자는 셈이다. 요즘은 새벽에 딱 한 번만 깬다. 많이 깨면 두 번, 이제 언니가 새벽 늦게 들어오느라 누르는 도어록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걱정 없이 자던 때까지 돌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걸음 뗐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앞에서 했던 얘기로 돌아가보자. 내가 아무 걱정 없이 잘 잘 수 있었던 삼십 대 전과 지금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나는 잠을 전보다 잘 자게 됐지만 여전히 소음이나 빛, 몸의 온도나 허기에 굉장히 예민하다. 경험상 한 번 예민해진 사람은 다시 둔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삼십 대 전에는 예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을 잘 잤던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나'중심이었던 사고는 가족, 친구, 연인으로 점점 확장했다. 더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됐고 감당해야 하는 일의 난이도는 높아지기만 했지 결코 낮아진 적이 없다. 고3 당시에는 수능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꼈지만 현재의 나에겐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더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거쳐왔다. 그러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예민함의 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불면증을 경험하기 쉬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니 많은 성인들에게 불면증이란 살면서 한 번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외국인이 올린 짧은 쇼츠를 본 적이 있다. 흙탕물이 든 컵을 깨끗하게 만들려면?이라는 주제였는데 처음에는 여자가 숟가락으로 흙탕물을 조금씩 골라서 퍼낸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주 미세한 입자의 흙먼지가 일어나서 더 탁하고 지저분한 물이 됐다. 영상 마지막에는 아예 깨끗한 새물을 흙탕물이 든 컵에 들이부었다. 그러자 지저분하던 흙탕물이 숟가락으로 퍼냈던 것보다는 몇 배는 더 깨끗한 물이 됐다.
누구나 태어날 땐 깨끗한 물로 가득했을 거다. 그러다 조금씩 흙먼지가 들어왔고 긴 시간을 먹으며 천천히 가라앉은 먼지들은 그 두께가 꽤 두꺼워졌을지 모른다. 내가 불면증을 처음 인식했을 때, 내 안엔 처치곤란인 흙탕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잠을 못 잤나 싶다. 사람들을 일부러 더 만나고,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항우울제를 먹는 등의 노력은 숟가락으로 흙먼지를 퍼내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는 동안 수면 위로 치솟은 흙탕물은 자려고 누울 때마다 가라앉지 못하고 나를 계속 숨 막히게 했을 거다. 지난 과거를 툭툭 건드리고 끄집어내느라 슬프고 화나고 마음이 아파서 잠을 못 잤을 밤들을 생각하면 그땐.. 참 어쩔 수 없었지 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깨끗한 새 물이 필요했다. 불면증을 해결하려고 했던 노력은 아니지만, 길이 안 보이는 불면증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나에게는 작고 소소한 취미가 생겼다. 색채심리, 컬러테라피에 관한 공부인데 관련해서 상담 자격증을 취득하느라 약 한 달은 거의 공부에만 매진했다. 출퇴근 길에 강의 녹취본을 듣고 집에 와서 복습하고 이 생활을 거의 패턴화 했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먹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잠잘 수 있게 된 건 어쩌면 여기에 힌트가 있는지 모른다.
마음이 너무 괴롭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을 못 자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 마음속의 흙탕물을 깨끗하게 바꾸는 법은 지금 내 안을 휘젓는 게 아니라, 새롭게 퍼부을 깨끗한 물을 찾는 거라고. 가장 좋은 수면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하는 운동, 억지로 나를 피곤하게 만들려는 약속들이 아니고 내가 관심 가는 일을 찾는 것이라고. 물론 마음이 너무너무 괴롭고 힘들 땐 바로 관심 가는 일을 찾을 수 없다. 그땐 그냥 괴로움을 정면으로 맞으며 잠시 버텨야 한다. 진짜 괴로울 땐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냥 잠깐만 숨 고르기를 한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준비가 되면 깨끗한 새 물을 마구마구 내 안에 부어주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오늘 밤은 아무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