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be not proud
<WIt> (2001)
Nothing but a breath -- a comma -- separates life from life everlasting. It is very simple really.
영화 <Wit>위트는 2001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로, 마이크 니콜스가 감독, 엠마 톰슨이 주연을 맡았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뮤지컬을 마이크 니콜스가 TV 영화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주인공인 엠마 톰슨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 채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독특한 연출기법을 사용한다. 1인칭 내레이션을 통해 주인공이 직접 서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도 단순하다. 성공한 영문학과 교수 비비안 베어링이 난소암 4기로 판정받고 강력한 화학요법 치료를 받는 과정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죽음을 이겨내기 위한 화학요법을 받으면서 오히려 죽음을 더욱 가깝게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의료윤리학적 관점과 더불어 인간의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1 죽음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
먼저 이 영화는 '죽음'을 정의한다. 비비안 베어링과 그녀의 은사인 애쉬포드는 함께 존 던의 시에 대해 논의하며, '죽음'을 각자의 방법으로 해석했다. 생전에 죽음과 치열하게 '싸워야'했던 존 던(John Donne)이었기에, 그의 시 속에는 죽음에 대한 투쟁이 담겨있다. 그리고 존 던(John Donne)의 Holy sonnet 10의 마지막 부분.
"Holy sonnet 10" by John Donne(1572-1631)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비비안은 위의 문장에서처럼 세미콜론과 느낌표를, 그녀의 은사님인 애쉬포드는 아래와 같이 쉼표를 찍는다.
비비안이 세미콜론과 느낌표를 통해 '죽음, 너는 곧 죽을 것이다!'라고 해석한 것에 대해, 애쉬포드 교수는 그녀가 잘못된 책을 인용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애쉬포드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죽음은 삶과 죽음 이후의 삶 사이의 '쉼표'같은 것이다. 또 세미콜론은 오히려 죽음(Death)을 넘지 못할 두려운 장벽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에 비비안은 곧장 도서관에 가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찾아보겠다고 말하지만, 애시포드는 오히려 '밖으로 나가 삶을 즐기라'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명한 영문학 교수가 된 비비안은 어느 날 난소암 판정을 받고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존 던의 시를 연구했던 그녀는, 자신이 연구했던 시 속 죽음을 직접 마주한 것이다. 강력한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을 모두 잃고 점점 야위어가는 그녀는 당시를 씁쓸한 눈빛으로 회상한다. 수술실에서 자신의 제자였던 인턴 의사에게 교수로서의 권위나 자존심을 모두 버려야 했던 비비안. 인간으로의 존엄성과 교수로서의 명예는 온데간데 없고, 그녀의 곁에는 그녀가 읊는 시만이 존재한다. '밖으로 나가서 삶을 즐기'지 못했던 비비안에게 죽음은 과연 쉼표가 될까?
아래 장면은 그녀를 찾아온 유일한 문병객, 애쉬포드 은사님이다. 애쉬포드는 손자를 위해 가져왔던 동화책을 읽어주며 그녀가 곤히 잠을 잘 수 있게 해 준다.
“If you become a bird and fly away from me, I will be a tree that you come home to.”
― Margaret Wise Brown, The Runaway Bunny
가쁘게 내쉬던 숨이 멎는 비비안에게 이 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쩌면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연구에만 매진했던 그녀에게 애쉬포드의 품은 자신이 매진했던 연구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 들려준 이 동화책은 애쉬포드의 따뜻한 위로이기도 하다. 그 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이제 한 숨 돌리라고. 삶을 다 살아냈으니 그 다음 단계인 죽음에서 편안히 쉼표를 찍으면 된다고. 이제는 고통스러운 싸움을 멈추라는, 죽음 그 자체도 죽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이후가 시작될 것이라는 따뜻한 인사말이었던 것이다.
#2. Soporific
그렇게 죽음에 가까워지는 비비안은 점차 자신이 더 어렸을 때를 회상한다. 그녀는 동화책을 읽고 있었고, 그녀가 모르는 단어가 등장하자, 아빠가 단어의 뜻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과거 대화에서 아버지는 'Soporific'이라는 단어의 뜻을, "저녁 식사 후의 지루한 대화와 같이 서서히 잠이 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일러스트 속 토끼가 진짜 잠을 자고 있다며 신기해하는 그녀는 토끼가 최면에 걸려 잠에 든 것이라고 이해한다. 어쩌면 이때의 비비안은, 과거 시절을 떠올리며 죽음을 '최면에 드는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저녁 식사 후에 최면처럼 졸려오는 것. 애쉬포드가 건넸던 인사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3. Humanity
마지막으로, "인간성(Humanity) vs 성취(Achievement)"에 대한 주제다.
영화에서 베어링 교수는 한 때 자신의 제자였던 젊은 의사에게 "넌 왜 암을 연구하니?"라고 물어본다. 그리고 내심 자신을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해 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젊은 의사는 자신이 관심 있는 이 학문분야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설명하고는 바쁘게 나가버린다. 베어링 교수는 크게 실망한 얼굴로 자신도 인간성을 베풀지 않고 학생들을 대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성보다도 학문이 중요한가 봐요. (He prefers researh to humanity)"라고 말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후회가 점철된 눈빛으로 말이다.
그녀 스스로도 역시 시를 분석하고, 학문에 매진하고, 높은 명성과 학문적 인정을 받는 데에 몰두했지만, 결론적으로 어렸을 때 토끼 동화책을 보면서 단어가 눈 앞에서 현실이 되는 마법을 다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베어링 교수는 그렇게 죽음을 앞두고 다시 인간성('Humanity')을 갈구하게 되었고, 자신이 평생 연구하던 글자가, 그리고 존 던의 시 속 죽음이, 현실이 되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치료의 목적을 가진 병원의 근본적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공간에서 윤리와 인간성의 준수는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중시되어야 할 이 공간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의료 윤리학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도 이는 해당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더 높은 이상과 발전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이전에 가장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삶의 태도가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죽음은 단지 쉼표일 뿐이고
거부할 수 없게 낮잠이 오는 것과 같은 현상이니
두려워 말라.
존 던과 비비안의 죽음에 대한 투쟁이 담긴 영화였다. 그들의 투쟁은 성공이었을까, 실패였을까? 또 죽음에 대항하여 우리의 삶은 얼마나 그 의미를 발하고 있으며, 무엇에 우리는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