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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Apr 01. 2022

오, 나의 샌님 3

 경수는 1시간 만 눈을 붙이고 같은 시간에 출근했다. 한 시간 뒤, 여기저기서 직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속 정확한 보고체계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을 동시에 보았다. 모두가 기사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손 쓰며 나서지 않았다.    


"정과장, 기사 봤어?"

"네..대박이예요. 어떻게 안거죠?"

"졷됐네...피곤하게 됐어."


"아니 차라리 잘 된거 아니야?"

"그나저나 기자오면 뭐라고 인터뷰 해야돼?"

"그러게. 솔직히 말해도 되려나.."

"본점 가겠지, 여기 오겠어 설마."


 두 시간 뒤, 회사 총무팀에서 공식 메일이 왔다. 기강 확립 및 비밀 엄수 서약에 관한 내용이었다. 집합금지명령을 어기고 100명 이상이 모였다는 헤드라인과 별개로, 회사 측 입장은 조직의 기강해이에 방점이 찍혔다. 비밀을 엄수하자, 다시 기강을 확립시키자, 는 취지의 메일이었다. 특히 엊그제 직원회의에 관한 이야기는 외부누설시 회사 이미지 실추가 우려되오니, 어떤 신문사든 인터뷰 의뢰가 오면 거절하라는 내용이었다. 


 경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흥분은 우선 자기가 생각보다 큰 일을 저질렀다는 ‘일탈감’ 으로부터 나왔다.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며, 지금껏 잡음 한 번 일으켜 본 적이 없는 온실 속 화초에게 그 체감은 과대계상 되었다. 솟아오르는 엔돌핀 때문인지, 경수는 아메리칸 갱스터와 홍콩 느와르를 떠올리며, 그들의 일탈과 자신의 것을 견주었다. 가령 총이나 마약을 수단삼아 목숨 따위를 걸어야 하는 불장난과 다를 바 없었다.    


 비밀리에 사람들의 반응을 훔쳐보는 묘한 즐거움도 한 몫했고, 무엇보다 그 익명의 제보자는 곧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람들은 다음날에 이르러서야 그 기사가 가짜뉴스인 줄 알았으며, 그때부터 그 익명의 기자는 체게바라로 불렸다.           


 규형은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한 번 두리번 거렸다.      


“야 시발 대박이지 않냐. 어제 사장 난리 뒤집어 졌댄다. 기획상무랑, 총무상무 계속 불려들어가고, 사장은 하루 종일 소리 지르고.”     

“아..그래?”     

“근데 존나 웃긴게 그게 다 사실이라, 일 커질까봐 허위뉴스 신고도 못 한대잖아.”     

“그러게..”     

“그리고 또 사장이 전 직원 다 집합시키자는거, 상무 둘이서 뜯어 말렸댄다. 오 마이 지저스.. ”     

"..."

"아..체게바라님 존나 멋있어..."


 다음 날 기획팀에서 전화가 왔다. 면담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경수는 지점장님께 말하고, 본점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세뇌 시켰다. 완벽한 거짓말은 자신까지 속여야 하는 법, 하지만 좌회전 할 때마다 들킬 염려에 가슴이 철렁했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기획실로 갔다.     


“어, 왔어?”     

“안녕하세요.”     

“그냥, 차 한잔 하려고 불렀어. 앉아.”     

“자네, 어제 기사 봤나?”     

“네 봤습니다.”     

“그게 말이야 지방의 신문사 단독으로 올라온 보도인데, 내가 전화해보니까 그런 기자가 없대. 기사도 쓴 적이 없고.”     

“아..네. 근데 왜 그걸 저한테?”     

“그냥, 어제 회의시간에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난 자네가 의심돼.”   

  

 경수는 차 안에서 연습했듯 자기는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자기도 어제 일이 유감이지만, 신문 기사는 본인에 관한 내용이 아니지 않냐, 솔직히 100명이 넘은 사람들 중 모이는 게 불편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냐고 해명했다. 무엇보다 자기가 그런 제보를 하면, 의심받을 거 뻔한데 자기는 그런 배포 따위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 뭐, 내가 그동안 자네 6년 동안 묵묵히 일해 온 거 보면 그럴 사람은 아닌 거 알아.”     

 경수는 대답 대신 녹차를 마셨다. 그동안 실천해 온 경수의 사회생활 제 1법칙 덕분에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높은 사람 눈에 띄지 말 것.’     


“그리고 어제 전 직원 앞에서 면박 준건, 대표님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네.”     

“그러니까 김계장도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지금처럼 성실히 해줘.”     

“네.”     

“그래, 그럼 이만가봐.”     



 한 달이 지났다. 총무계에서 메일이 왔다.      


 금번 종무식과 시무식은 코로나 관계로 화상으로 대체 하오니다음 링크를 누르셔미리 구독 알림설정 하시길 바랍니다전 직원은 미리 숙지하여 불참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일시 종무식 2021. 12. 30. 18:30 / 시무식 2022.01.02. 07:30           

장소 : https://youtu.be/GcD2ctr_HPc     


 경수의 마음에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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