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시작 전, 가장 먼저 책상 위에 놓이는 건 OMR 카드다. 문제지도 받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다. 10분 남짓한 시간이, 이상하게도 길게만 느껴졌다. 수험번호, 이름, 시험지유형… 몇 번을 겪은 일인데도, 괜히 먼저 적었다가 부정탈까 봐 가만히 있었다.
이번엔 그냥 감독관 말에만 따르기로 했다. 진부한 안내방송도 괜히 건너뛰면 탈이 날 것 같아서, 묵묵히 듣는다. 이쯤 되면 털끝만 한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내가 아는 것들이 하나둘 휘발되는 기분이다. 펜을 쥐고 있지만 쓸 것도, 할 것도 없다. OMR카드 뒷면에 암기코드 같은거라도 써볼까 하다가 채점하는 기계가 낙서마저도 판독할 거 같아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어느새 미신을 믿는 수험생이 되어 있었다.
“시험 시간은 10시부터 11시 40분까지입니다.”
감독관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또렷하다. 앞엔 안내하는 사람, 뒤엔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 공무원이겠지. 아마 예전엔 나처럼 이자리에 앉아 시험지를 바라보던 사람이었겠지. 그런 시간을 지나, 이젠 누군가의 시험을 지켜보는 자리까지 온 거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든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견디는 중이다.
7시간 동안 시험을 보는 사람과 7시간 내내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 중 과연 누가 더 힘들까. 그건, 둘 다 겪어본 그녀만이 알거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불안이 밀려온다.
‘문제 유형이 다 낯설면 어쩌지?’
‘한 문제에 오래 붙잡히면 시간 모자라지 않을까?’
‘다 풀어놓고 마킹 밀리면…?’
머리속은 쓸데없는 생각들로 바쁘다. 멈추고 싶어도, 생각은 멋대로 흐른다.그래서 잠깐 멈춰 서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데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사이 시험지가 나눠졌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분명 아까전에 다녀왔는데도 쥐어짜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다. 팔을 들어 걷는 건 내 의지지만, 오줌이 마려운건 내 의지가 아니다. 조절할 수 없는 감각은 꼭 원치 않을 때 찾아온다. 어차피 못 간다. 그냥 참는 수밖에.
어떤 생각도 멈춰야 할 순간이다.
“이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차라리 이게 낫다. 그제야 몰입할 수 있었다. 생각이라는 소음은 정작 아무 일도 없을 때 더 시끄럽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릿속은 끝없이 돌아간다. 차라리 시험이 낫다. 문제는 있고, 시간은 흐르고, 그 안에서는 걱정도 사치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은 일종의 구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