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르는 건 과감히 넘기기로 했다. 확실히 아는 문제부터 붙잡아야 한다. 그런데.. 모르는 게 생각보다 많아 쭉쭉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와중에 정신줄을 다시 한 번 붙잡아야 했다.
'어차피 객관식이다. 60점만 넘기자.'
‘비워야 채운다’는 말. 그런 류의 위대한 가르침이 정말 맞는지는 몰라도, 모르는 건 그냥 넘겨야 이거라도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머리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시동만 걸리면 된다. 그순간부터는 내가 알고 있는 논리와, 머리 어딘가에 박혀 있던 무의식,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찍신'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몰입이 시작된다.
문장을 하나씩 짚어가며 문제를 읽는다. 보기 중에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익숙한 단서를 붙잡고, 정답이 아닐 법한 후보들을 하나씩 지워간다. 그러다가도 한쪽 구석에선, 불안이 짹거린다.
'괜히 고쳤나.'
'그냥 처음게 맞았으려나.'
답을 바꾸는 순간의 심리는 늘 변덕스럽다. 처음엔 분명 ③번이었는데 다시보니 ②번이 더 믿음직스럽다. 보기와 지문을 몇 번 더 훑는다. 이제는 ②번이 다는 단서를 찾는 게 아니라 ②번이 ②번이어야 할 이유를 욱여넣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답은 고치지 말라는 걸까. (채점할 때 보니 바꾼건 거의 다 틀렸다.)
다시 불안이 조용히 기어들어온다.
'OMR카드 마킹을 잘못하면 어쩌지?'
나는 OMR카드 숫자 위에 빨간색으로 내가 고른 번호를 조심스레 체크해뒀다. 시험지와 대조하며 검은 점을 다시 칠해간다. 돌다리를 세 번쯤 두드리고 건너듯, 한 칸, 한 칸을 의심하며 마킹하다 보니, 몇 문제는 손도 못 댄 채 흘러갔다. 답을 밀려쓸까봐 너무 조심스럽게 마킹하다가 정작 풀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하지만 모르는 건 결국 모르는 거다.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찝찝함 대신 '애초에 나와 인연이 없는 문제'였다고 넘겼다. 못따먹은 포도는 셨다고 믿는 게, 그나마 마음 편안 일이니까. 그렇게 첫 시험을 투닥거리며 어렵게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