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오전과 오후, 두 번 치러야 한다. 점심시간은 그 사이에 끼인 회색지대다. 밥을 먹자니 체할 것 같고, 책을 펴자니 머리에 남는 게 없다. 결국 나는 파이널 모의고사 강의를 틀었다.
머리 속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나에겐, 이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지막 시험을 대비하기 보다 ‘그래도 뭔가는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아내가 싸준 유부초밥을 먹으면서 강의를 봤다. 입으로 넘겼는지, 코로 넘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먹었다. 이건 식사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섭취였다. 다음 시험에서 버틸 최소한의 연료를 채워 넣어야 했다.
2차 시험은 두 과목이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네 과목이 남아 있었다. 남은 점심시간은 45분. 그 안에 어떤 과목을 복습할지 결정해야 했다. 1교시 과목에서 답을 바꾼 그 문제, 도대체 맞았을까? 머릿속에서 자꾸만 그 문제가 튀어나왔다. 지나간 걸 곱씹는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마음은 자꾸 뒤를 돌아봤다.
네 과목 전부를 훑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짓눌렀다. 어느 과목을 볼지, 그 안에서 어떤 챕터를 훑을지, 손이 책 위를 맴돌기만 했다. 모르는 걸 다시 살펴볼까, 익숙한 개념을 한 번 더 짚어볼까. 쥐지 않은 선택마다 손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판단만 맴돌다 결국 손이 간 건 또 강의였다. 머릿속이 빈 사람에겐, 대신 말해주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건 복습이라기보다 도피에 가까웠다.
2교시 공법과 중개사법 시험이 시작됐다. 첫 번째 과목은 문제를 읽자마자 어디선가 본 듯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공부했던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답을 고를 때마다 ‘이건 봤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따라붙었다. 저걸 왜 안 외웠을까, 왜 한 번만 더 보지 않았을까. 시험을 보는 중인데도, 공부를 더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철이 든 거라 보겠다.
그런데 채점 결과는 의외였다. 어렵다고 느꼈던 문제들이 오히려 잘 맞았다. 머뭇거리고, 지우고, 다시 생각했던 순간들이 무의미하진 않았던 거다. 돌이켜보자니,그때의 나는 꽤 의젓했다.
3교시 세법과 등기법 과목은 정반대였다. 지문은 낯설었고, 예상했던 유형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담담함을 줬다. 고민도 멈췄다. 그러자 묘하게도 마음이 느슨해졌다. 공부는 부족했지만, 점수만큼은 잘 나오길 바랐다. 그러니까 나는 뻔뻔했고, 무모했다.
지푸라기처럼 단어 몇 개에 매달리며 정답을 찍는 동안, 마음 한켠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허망한 착각이었는지는, 결과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 과목 때문에 떨어질 뻔했다. 공부가 부족했던 과목에선, 철딱서니가 없었다.
드디어 끝났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머리보다 발이 먼저 지쳤고, 마음보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집에 가서 샤워하고, 이불 속에 푹 파묻히고 싶었다. 나는 오늘의 나를 다 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