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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편과 대화가 멈춘지 3년째

멈춘 대화속에 일상들

by 이숨

금전적인 어려움이 시작된 건 몇 해 전이었다.
남편의 가게가 어려워지고, 결국 문을 닫으면서 우리의 삶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쳤고, 늘 쫓기듯 살아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서로를 마주할 여유는 점점 사라졌고,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다.

남편은 날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불만과 피로가 묻어났다.
처음엔 이해하려 했다.
그도 힘들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눈빛은 날 향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감정의 칼날이 숨어 있었다.

나도 상처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탓할 여유도 없었다.
서로에게 지쳐버린 두 사람,
함께 있어도 외로운 부부.
결국 대화는 멈췄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믿었다.
침묵이 내 유일한 방어가 되었다.

같은 지붕 아래 살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서로의 움직임만 느낄 뿐,
인사는 사라졌고, 식탁의 대화도 사라졌다.
“아빠 식사하시라고 해봐.”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해도
그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 한 번의 거절이,
우리 가족의 온도를 차갑게 식혀버렸다.

아이들도 처음엔 혼란스러워했다.
그래도 아빠를 따라다니며 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조차 말이 줄었다.
이제는 안다.
아빠는 필요한 걸 채워주는 사람일 뿐,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그래도 아이들은 자란다.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면 다행스럽다가도
가슴 한쪽이 시리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밤이 되면 조용한 거실에 불빛 하나만 켜둔다.
남편은 방 안에 있고,
나는 세탁기를 돌리며 하루를 정리한다.
그 소음이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적어도 그 소리는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불편했던 일상이 어느새 익숙함이 되어버렸다.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관계.
이게 평화일까, 아니면 포기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의 인생에서 손을 놓았을까.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삶이 우리를 너무 빠르게 소모시킨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다.
그 사실 하나로 오늘을 버틴다.

때때로 거울 앞에 서면
예전의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진다.
웃음이 줄었고, 눈빛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은 순간도 많지만
그래도 하루를 넘기고 나면
‘오늘도 버텼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대화는 여전히 멈춰 있다.
남편과의 거리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젠가 이 침묵이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나는 그 안에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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