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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Oct 03. 2020

드라마, 그 일반화의 위로

이번 생은 처음이라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멜로가 체질인 가족입니다


<슬픔의 위로> _메건 더바인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느끼려면, 상대방이 당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져야 한다. 당신이 겪고 있는 상실의 현실이 약화되거나 희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공감의 거울을 통해 당신에게 고스란히 반사되어야 한다. 언뜻 납득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슬픔 속에서의 진정한 위로는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번생은 처음이라>

세상이 나아질 리가 없으니 당연히 내 인생도 나아질 리가 없다.

나은 내일이 아니라 최악의 내일을 피하기 위해 사는 걸지도 모른다.


<멜로가 체질>

내가 싫다고 해서 상대방 마음에 대해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그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당신이니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은주 : 은희가 찬혁씨 좋아한 적 있어요.

          걔 누구 좋아하면 선 긋거든요.

          둘째여서 이쪽저쪽 눈치 보고, 비위 맞춰주고, 웃겨줘야 집안이 잘 돌아간다는 거를 너무 일찍 알았어요.

          자길 낮춰 버릇해서, 지 눈에 괜찮고 멋져 보이는 사람은 어차피 안 될 사람, 아예 선을 그어요.

찬혁 : 가족만 아는 은희 성격이네요.

은주 : 겉으로는 그저 초긍정으로 보이니까요.

          암튼, 입학하고 찬혁씨 얘기를 자주 하다가 어느 순간 멈추더라고요.

          성숙해져서 극복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연애는 어떤지.. 아, 은희 못마땅해하는 거 그만하기로 했는데..


-


‘인관관계에 지쳤다’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어느 누구 하나 내 맘 몰라주는 시기는 크면 클수록 주기 짧게 반복된다. 그 와중에 꼭 듣는 것은 ‘가족밖에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특별함을 제창하고 싶은 건 아니다. 말 안해도 다 알고, 불편한 듯 제일 편한. 그 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다들 가족 드라마 보면서 우는 이유도 그에 기인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세 개가 있다. 먼저 다 본 순으로, 이번생은 처음이라. 멜로가 체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단순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고, 셋 다 보다가 눈물 흘려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가족과 친구, 직업, 사랑. 내 일상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대화들과 장면들에 공감이 가서 좋아한다. 책 <슬픔의 위로> 속 구절을 빌리자면 공감이 진정한 위로라고 한다. 나는 드라마로 위로받았다. 청승맞다.


위에 드라마들의 대화들을 굳이 끼워 넣은 건 공감돼서다. 내가 둘째거든. 하지만 소름 돋게 나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대사들 중에서 제일 공감된 것도 아니다. 보편적으로 공감 가능한 대사를 가져오려고 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같은 인간이라 기본적 감정선에 유별난 것 없다는 게 내 신조다.


나는 확실하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 단 하나의 예외라도 있을 거라는 또 다른 확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어떠한 관계에 있어서도 필연성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친구는 물론,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그에 대한 타당성과 논리를 따졌다. 나쁜 건 아니었다. ‘보편적’, ‘일반적’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계속해서 경계했다. 그것은 의외로 세상 만물을 넓은 범위로 포용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앞서 내 신조라고 이야기한 것은 나에게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건 아닌데, 드라마들의 영향이 순차적으로 좀 있었다. 내 친구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맨날 민트 초코맛을 먹는다면, 다음에 나 혼자 가게에 들러 자연스럽게 친구를 위해서 민트 초코맛을 고르는 것. 꽤 좋은 예시이다. 사회과학적, 통계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맞다. 사람들의 보편화된(보통 사회과학에서 잘 쓰이니까) 행적은 연구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것 외에 하고 싶은 말은 당연함이 주는 다정함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이라서 이 정돈 해야지, 내 친구니까 이 정돈 해줄 수 있지. 기뻐. 행복해. 속상해. 미워. 화나. 짜증나. 모든 감정에 일일이 변명과 이유를 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특히 그 모습이 잘 묻어나서 보면서도 부러웠던 인물이 ‘멜로가 체질’의 진주다. 은정과 한주도 비슷하지만 진주는 미워할 수 없게 사랑스럽다. 그녀는 친구니까, 가족이니까, 사랑하는 연인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한다.


세 드라마 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모습들이 많다. 재벌 2세와 신데렐라의 만남. 뭐 이런 것이 아니라.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나처럼 위로받기도 하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반적이라 해서 개성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 모습 그대로, 무언가를 경계하지 않고 그저 나로, 아주 야무지게 살아간다. 지호, 수지, 호랑, 진주, 은정, 한주, 은희, 은주까지 모두 다. 그건 현실세계에서 더욱이 적용된다. 보편적인 감정선과 사회과학적 행적들은 기본으로 깔고, 더 다른 나를 견고하게 쌓아간다. 이 기본 토대는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믿음이 된다. 무너지면 어때, 기본은 하는데! 이런 무지막지한 용감함을 가질 수 있달까. 뜬 구름 잡는 소리 하고 싶지 않아서, 실사례를 들어볼까 한다. 뭐 어디 회사 생활하다 힘든 일 있으면 감정선이 일렁이는 것. 자책이든, 분노든 뭐든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반응한다는 것은 의외로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친구든, 가족이든, 혹은 일기장이든 어느 군데에다 털어놓고 위로받는 것. (사실 친구한테 욕하며 씹는 것이라고 적으려다, 너무 사회과학적이라 예외를 고려하고 싶어 길게 늘어놓았다. 내 습성.) 결국에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래의 행동과 습관에 안전망이 된다. 그래서 사랑받으며 산 사람은 티가 난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 때묻지 않는 강함은 인생에 사랑이 바닥날 일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항상 행복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냥 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돌아갈 곳의 필재(必在)가 주는 여유는 있다. 그건 어쩌면 세상 만물을 경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계하는 모든 것들을 습관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일 느슨하게 살아가는 법을 아는 여유로운 변태들이 되는 것이다. 너를 제일 친한 친구라 부르고, 너의 마음을 읽었다 생각하고 그에 반응한다. 아빠가 예민한 것에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 지 알고 있다. 등등의 상황들은 이런 습관화로 능글맞은 능구렁이가 된 내 모습을 확인하기 쉽다.


그래서 이 드라마들은 연애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장 많은 습관들을 관철시키며 '원래 다 그래~~'라는 일반화를 만들지만, 그게 더 새롭고 오히려 창의적이다.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해결하는 바는 다채롭기 때문에. 그 수백 가지의 방법들은 어떤 이들의 돌아갈 곳이 되기 위해, 공감받을만한 일반화를 찾는다. 그래서 모두들 위로받고 눈물 흘리는 듯하다.


-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사실 따로 다루고 싶었다. 미디어에서 주로 다루던 일반적인 가족 내러티브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현재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은주, 은희가 다 하고 있다. 소문난 칠공주처럼 복작복작거리는 가족 이야기는 끝이 난 지 오래다. 어느 가족이든 그들만의 역사는 상대적 희로애락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의 관계는 필연성에 묶여만 있을 뿐, 실효력은 없다. 단순하게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이다. 다시 태초의 끈끈함을 가지진 못하지만, 그 어긋난 네모 세모들이 지내 온 시간들을 재조명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사랑만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일반화에 어울린다는 합격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장담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일상 일치도가 가장 높은 드라마일 것이다.


‘멜로가 체질’의 캐릭터들이 다른 드라마보다 돋보이는 건 우리 이야기를 너무 사실같이 수다로 떠들어서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내러티브에서 빠져나와 큐레이션 하는 장면들은, PPL 포함, 진짜 대단하다 생각한다. 이병헌 감독 색깔뿐 아니라 영화 같은 요소들이 많았다. 16부작의 길고 긴 사람 영화를 본 느낌. 역시 여기 사람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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