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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성 Nov 10. 2021

골목길을 비추던 햇살

신림동-봉천동

내 기억 속 첫 집은 작은 골목길에 있었다. 봉천8동 쑥고개 시장에서 신림동으로 넘어가는 길목, 작은 골목길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주변엔 내 또래의 작은 아이들이 두어 명 있었던 것 같다. 그 길의 특징이라 할 것은 마름모 꼴의 아이 몸통만 한 돌을 박아 넣고 그 사이사이를 시멘트로 메워놓은 구조의 담벼락이다. 기억 속에서는 넓게 느껴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들이 대게 그렇듯 이 장면도 빛바랜 컬러사진 같다. 대략 계산해보면 내 나이는 두세 살, 그럼 아버지가 해외 근로자로 나가 계실 때였다.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던 어머니는 꽤나 고단하셨을게다. 하지만 사진으로 남아 있는 이 시절 누나와 나의 모습은 볼이 빨갛게 부르튼 귀여운 아이들이었고, 밝게 웃는 표정 속엔 그늘이 없다. 지금 네 살인 둘째 아이를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의 나에게도 슬픔이나 외로움에 시간 쓸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 장면 속 그나마 구체적인 사건 중 하나는 골목길 담벼락에 쓸려 다친 손이다. 아이들과 놀이를 하다 그랬는지 아니면 그 담벼락을 올라 보려다 미끄러졌는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래, 아팠다. 어쩌면 그 통증 때문에 그 몇 초가 다른 수많은 기억들을 제치고 살아남았나 보다. 찬란하고 행복했던 기억도 물론 의식과 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지만 결국 우리 삶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며 귀띔하는 건 아팠던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린 시절 첫 기억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이유는 상처 위로 내리쬐던 햇살 때문이다.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늦은 오후 주황을 띄는 노란빛은 유난히 찬 내 손을 잡아 주는 따뜻한 아내의 손 같았다.


햇빛은 나에게 상처의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어떻게 해야 나을  있는지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작았던  위를 따뜻하게 보듬어준 것뿐이었다.  기억과 시간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런 따뜻함이 소중해진다. 나의 아픔을 묻지도,  아픔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로 떠들어대지 않고 옆을 지켜 주는 따뜻함. 나의 존재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런 기억이 싶다면 이제 와서 너무 늦어버린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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