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양 May 26. 2024

앓음다움에 대한 단상

제한 혹은 무제한, 2023, @美量(미양)


내 필명 美量의 유래는 책에서 보았던 아름다움을 헤아리다라는 한 구절에서 따왔다. 아름다움-앓음 다움의 번형으로써,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직면하고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나는 이 필명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때때로 의문이 들었다. 나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고,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멀어져 가는 것들을 그저 이기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던 텅 빈 순간들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먹고살려고, 살려고.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프기 때문에 열네 살에 이미 자살을 시도했고 스물아홉의 나는 가족의 배신을 눈앞에서 목도하고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정말 지금 당장 사라지더라도 슬퍼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살고 싶었던 건 왜일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말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이 스쳐갔다. 나는 정말로 나의 아픔을 끝까지 마주했을까? 너무 아파서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아닌 타인을 의식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굴레 때문에, 아픈 가족 때문 에라도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뿌리 깊은 관념이-그게 차라리 편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들여다볼 용기가 부족했었던 건 아닐까.


세상이 나를 어떻게 정의 내리고, 내가 어떻게 방치되고 짓밣히고 숨을 쉬지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나는 살고 싶다고. 내가 나라서 살고 싶다, 사랑하고 있다는 몇십 몇백 몇천 몇만 몇억 개의 문을 열고 나서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자아를. 문의 수만큼 헤아릴 수 없는 훨씬 더 많이 존재할 모든 아픔들에게도 언젠가 그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美量(Meeyann)

작가의 이전글 뿌리는 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