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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Aug 22. 2019

잔망스런 이야기 11

TV

다섯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단편적이지만, 아빠가 할머니를 뒤에서 안고 있었고, 고모들이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연신 할머니 팔다리를 주물렀다. 난, 뭔진 잘 모르지만, 아주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란 예감에 겁이나,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는 그 방에 있기 싫었다. 밖으로 나와서 마당을 빙글빙글 돌면서, 중간에 훌떡 뛰기도 하면서 울었다. 할머니 죽지 마, 할머니 죽지 마... 하면서.     


“할머니 죽을 땐, 그렇게 하는 거야?”


동네 아이가 물었다. 나도 처음이라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나온 행동이었다.     




내 기억에 우리 집엔 처음부터 TV가 있었다. 그게 뭐? 하겠지만 한 때 시골 우리 동네에 TV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이었다. 몸체에 늘씬한 긴 다리가 네 개 달린 금성사(지금의 LG)에서 나온 TV였는데,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TV라고 한다. 그 이후에 나온 것이 여닫을 수 있는 문이 달린 TV 장처럼 생긴 TV다. 우리 집이 당시 경제 여건상 심히 과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TV를 보유하게 된 연유는 ‘할머니의 실종’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엄마에게 들은 것이다)    


엄마가 막 시집왔을 때부터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으셨다. 집 아니면 동네 마실이나 좀 가시는 정도였다. 내 기억에도 할머니는 항상 양지쪽에 앉아계셨다. 그래도 손자 손녀들이 젖을 떼면 꼭 할머니가 데리고 주무셨다. 농사일에 집일에 바쁜 엄마를 배려하신 것이리라.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안 보이셨다. 저녁시간이 다 됐는데, 동네에도 안 계시고, 집에도 안 오셨다. 잘 걷지도 못 하시는 분이... 분명 사달이 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농협 연쇄점(마트)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아빠가 할머니를 모시고 가 당시 연쇄점에만 있던 TV라는 걸 보여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게 신기하고 좋으셨는지, 할머니는 장터까지 혼자 걸어가셔서 TV를 보고 계셨던 것이다.     


충격받은 아빠는 당장에 TV를 샀다. 엄마 말로는 몇 달치 월급(혹은 그 이상)은 썼을 거라고 했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집에서 편히 TV를 보셨고, 우리 집은 동네 극장(?)이 됐다. 나중에 온 동네 집집마다 TV가 있고, 심지어 칼라 TV가 들어올 때까지 우리 집은 그 늘씬한 다리의 금성사 TV를 봤다.     




나에게, 아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일찌감치 미디어의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신 우리 할머니!

아빠가 13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3녀 1남을 온전히 혼자 건사하셔야 했던 얼굴도 작고, 손도 작고, 몸도 작았던 우리 할머니는 그 날, 하나뿐인 아들 품에서 잠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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