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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Aug 28. 2019

잔망스런 이야기 15

힘든 아빠

딱히 크게 쓸데없어 뵈는 남자들 젖꼭지가 아직 퇴화하지 않은 건, 성 분화 이전에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엄마 뱃속에서 성별이 결정되기 전에, 젖꼭지가 먼저 만들어져서 남자들 젖꼭지가 아직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집 남자들은 노출증이 있다. 아빠, 큰오빠, 작은오빠... 웃통을 벗은 세 등판이 모여서 뭔가를 들여다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겨울은 그렇다 쳐도, 여름엔 반바지면 다행이고, 달랑 트렁크 팬티 차림이기 일쑤였다.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가 보다 했다. 큰오빠가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돼, 언니들과 큰오빠 집에 가서 TV를 보고 있었다.    


“아악~!”    


큰새언니의 갑작스러운 비명에 모두 놀라 쳐다보니, 여동생들 다 있는데 트렁크 팬티만 입고 왔다 갔다 한다고 큰새언니가 큰오빠한테 지른 소리였다. 우리도 아악~! 비명을 질렀다. 그럼 다른 집 남자들은 집안에서 헐벗고 안 다닌단 말이에요? 우린 남자들이란 종자들은 다 집에서는 그러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큰 새언니네 오빠랑 남동생은 안 그런다고 했다!    




큰새언니가 시집 온 그 해 여름, 가족들이 모두 모이기로 해 시골집에 갔더니, 세상에나 아빠가 체크무늬 반팔 셔츠에 면바지를 갖춰 입고 앉아, 신문을 보고 계셨다.     


“ 옴마야~ 아빠,.... 힘들어 보여...”    


내 말에 아빠는 ‘까부네’ 하시면서도 의미 있게 웃으셨다. 첫 며느리를 본 ‘시아부지’가 자리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우리 아빠 젖꼭지는 버튼 모양인데.. 어릴 때 내가 그걸 꾹, 꾹 눌러보다가, 손톱으로 파내려고도 했었는데.....     


아빠는 꿋꿋하게 ‘시아부지’의 품위를 지키셨다. 심지어 반팔 셔츠 속에 난닝구(?) 까지 입으셨다. 당시엔 시골집에 에어컨도 없던 때라, 식사와 가족 여흥의 자리에서 줄곧 품위를 유지하시던 아빠가 조용히 자리를 뜨시는가 싶어서 보면,  며느리가 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맨 끝 방으로 가 앞섶을 풀고서 쉬셨다. 


어느덧, 큰 조카 녀석이 태어나고, 우리 집 안 첫 아이라 이품에서 저 품으로 ‘공중부양’으로 컸다. 그때 까지도 아빠는 꿋꿋하게 '시아부지'의 품위를 지키셨다. 한여름이면 셔츠 단추를 한 개 더 푸시는 정도 라고나 할까. 그러다 작은 새언니가 시집오고, 큰 새언니가 둘째를 낳고, 작은 새언니도 첫째를 낳고... 아빠는 자연스레 여름에 반바지에 셔츠, 주로 난닝구를 애용하시게 된다.    


우리 큰 조카 녀석은 ... 겨울에도 열혈남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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