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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Sep 17. 2019

잔망스런 이야기 16

이유

초등학교 때, 반에 오줌싸개 남자애가 있었다.

꼭 수업 중에 실수를 했는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도 아니건만, 주변에서 먼저 알고 용무가 다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    


“선생님, 00이 또 오줌 쌌어요!”    


순식간에 책상과 의자들이 00 이의 자리에서 멀어진다. 홍해는 저리 가라다. 덕분에 교실 바닥이 젖는 게 너무도 잘 보였다. 당시엔 나무 바닥이라 더 적나라했다. 당사자도 홍당무가 된 얼굴로 그것을 지켜봤다. 마치 자기 능력 밖의 일이라는 듯.     




00 이는 옷을 예쁘게 입었다. 영국 어디 사립학교에 다녀야 할 것만 같이, 재킷(셔츠)에 반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반 양말을 완벽하게 갖춰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옆으로 빗어 넘겼다. 당시 시골에선 센세이션 한 일이었다. 엄청 부잣집이란 소문도 없었는데 한결같은 옷차림이었다. 엄마가 신경을 많이 써 주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부러움을 사기보단 ‘뭐야’하는 반응이었고, 오줌싸개임이 알려지고 나서는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됐다. 00 이는 학교 근처에 살아서, 실수를 한 날이면 담임 선생님이 집에 다녀오게 하셨는데, 가서는 또 그렇게 차려입고 왔다.    


운동장에 나가서 노래와 율동을 배우는 수업이 있었다. 저학년 때라 아이들 모두 좋아라 의자를 들고나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둘러앉았다. 담임 선생님은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앉도록 하고, 서로 손뼉을 주고받는 놀이를 가르쳐 주셨다. 한참 노래를 맞춰 부르며 놀이에 익숙해져 가는데, 내 맞은편에 앉은 00 이가 허벅지를 딱 모아 붙이고 다리를 뒤트는 게 보였다. ‘아, 00이 오줌 마렵구나’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00 이는 열심히 손뼉 치고 노래할 뿐, 담임 선생님을 부르지 않았다. 아, 노래 끝나면 가려고 그러는구나 했지만, 노래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 얘기가 이어지고, 또 노래를 해도 00 이는 절대 화장실 가고 싶단 말을 안(못) 했다. 허벅지에 힘을 줘 한쪽 엉덩이가 들린 채로 다리를 꼬면서도,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워서 손들고 ‘선생님, 00이 화장실 가고 싶데요!’라고 말해 주고 싶을 지경인데도 끝까지 버텼다.    


반 아이들 전체가 00 이의 오줌이 운동장 흙을 적시는 모습을 지켜봤다. 앞에 책상도 없었기에 00 이의 반바지가 젖고, 오줌이 맨다리를 타고 내려, 반양말을 적시는 모습까지 실시간이었다. 한 번 터진 오줌을 막을 수 있는 장사는 없다.    




다시는 학교에 못 올 것 같은데, 00 이는 결석도 안 하고, 전학도 안 가고 학교에 나왔다. 운동장 스탠드 계단 구석에 조용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00 이를 보면서, 참 알 수가 없었다. 왜 말을 못 했을까.. 그렇게 몸을 뒤틀며 힘들어하면서도, 코앞에 담임 선생님이 계신데도, 그 말 한마디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실수를 하면 아이들한테 어떤 꼴을 당할지 너무도 잘 알면서...   


‘옷이 불편한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00 이의 예쁜 옷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저렇게 차려입으면 막 놀기가 참 부담스러울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니 눈에도 너무 띄고. 그게 부담이 돼서 그러나? 그렇다고 오줌을 싸?.... 사실은 저렇게 입고 싶지 않은데, 엄마한테도 말을 못 하고 있는 건가. 그 말을 오줌 싸는 것으로 하나? 그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오줌싸개라고 놀림받지 말라고 신경 써서 입혀주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 깜냥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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