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형선 daniel Jan 12. 2024

대한민국에서 소수파로 산다는 것

존립이 걱정된다는 정의당에서도 소수파 그룹 멤버로 살기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대충 알겠지만 바른 태도는 아닌듯"



흔한 말로 편하게 이야기 되는 이야기가 있다.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다라는 말.. 

그런 말을 들으면 당원으로서 뭔가 변호를 해야하겠지만 그보다는 말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쉬운 먹잇감을 찾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정부 들어서 정의당에대한 비판은 조롱과 혐오의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국힘 이중대, 윤석렬 대통령 일등 공신 등등이 정의당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비판의 끄트머리에 따라 붙는 언사가, 

그나마 진보정당 하나 쯤은 있어야 해서 비례는 꼭 정의당 줬는데,  그 표도 아깝다는 말 들이 

점점 높아지는 데시벨로 들려온다. 


얼마전 있었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우리당 후보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인스타에 올렸다. 인스타에 첫번째 댓글은 '이미 망한 정당' 이었다. 그 댓글을 쓴 팔로워는 그나마 나와 면식이 있는 지인.. 한 참(5초) 을 생각한 뒤에 댓들을 달아 드렸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대충 알겠지만 바른 태도는 아닌듯" 한 참을 생각한 이유는 댓글 쓰는 이가 충분히 알만한 분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이미 망한 당'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윤석렬 2중대 라는 비아냥에도 유달리 차분해 질수 밖에 없다. 


한 때 진보정당의 당원이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자 일수는  있어도 바른 방향을 가지고 있고 이 들이 잘 되어야 한국사회가 발전한다라는 인식을 자주 접할수 있었다. 선뜻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정체성, 진보정당의 당원이지만 막상 드러냈을때 비호감보다는 호감을 더 느낄수 있었고,  여러 현안들에 대해 수시로 물어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완전히 동의는 하지 못하더라도, 올바른 지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정치 세력을 판단할 가늠자가 되었기도 했다. (물론 필자만의 특별한 경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당원이라는 존재는 어디가나 기이한 존재, 사회에 별 효용이 없는 존재,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사는 존재라는 인식이 대부분인 것같다. 그냥 느낌적 느낌은 아니다.  진보정당의 한국 정치에서 위상이 그렇고 지지율이 그렇고 득표율이 그렇다,  어쩌다가 진보정당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 많던 당원들은 어디로 가고, 그 많은 관심과 지지는 어떻게 사라졌을 까. 




한때 민주노동당은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희망으로 우뚝섰다. 50년의 낡은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있고,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20%에 근접하는 지지율과 높은 관심, 10명의 국회의원 입성이라는 지금 보면 더 놀라울 수 밖에 없는 정치적 입지는 진보정당에 대한 대다수 시민들의 높은 관심과 호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잠깐 비상하는 듯 하던 진보정당의 기세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후 분당사태를 거치면서 끝없는 추락의 길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하지만 추락하는 진보정당에게는 날개가 없는 듯하다. 


보수정당과 다르게 진보정당은 도덕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보수정당들과는 다른 현실인식, 즉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믿음이 깨졌다.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은 기성 정치인을 뛰어넘는 냉철함과 지도력을 가질 것이라는 환상도 깨어졌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낡음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열상으로 모든 가능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진보정당이 진보정당일 수 있는 자산을 하나하나 까먹으면서 반등의 기회를 만들기보다 는 추락하는 가속력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보수양당의 대립구도 속에서, 둘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는 가가 모든 정치적 쟁점을 맙도해버리는 한국정치현실에서,  패배한쪽의 알리바이로 작용하면서, 진보정당은 천덕꾸러기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이다.  오세훈을 당선시켰던 노회찬과 한명숙이 함께 경합했던 2010년 서울시장 선거가 그렇고,  불과 0.7%의  초박빙의 선거로 지금의 윤석렬 정부를 탄생시킨 2022년 대선이 더욱 그렇다.  엄연히 민주주의 제도하에 각기 다른 정당으로 존재하는 정당들이 경함을 벌였음에도,  패배한 정당이 소수정당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윤석렬 정부탄생의 1등공신이니, 아군이 아닌 적이라느니 하는 대단을 비난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395117&SRS_CD=0000010843#cb    (오마이뉴스 2010. 6.4)


기왕의 양당 정치에서 양 측의 쏠림 현상으로 정작 지지를 얻어내야할 잠재적 지지층을 빼앗기고 잇다고 믿는 진보정당에게는 가슴을 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나름의 억울한 마음을 추스르며,  와신상담의 기회를 노리고 있어야할 진보정당들에게,  한심한 정당, 망한 정당 이라는 비아냥, 조롱, 비난은 화가 나기보다는 쓰리고 아픈 언사이다. 


왜 2% 지지도 얻지 못하는 진보정당.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집단 망상에 걸려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이처럼 한국정치를 후퇴시키는 선거패배(누구의 패배인지 따져볼일이지만)를 야기하면서까지 2%의 지지도 얻지 못하는 정당에 남아있는 것일까.  과거의 좋았던 기억에 취해 현실을 보지 못하는 최면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나만 옳다는 아집에 빠진 자들만의 집단이기라도 한 것일까.  나같은 당비만 내는 비활동 당원 외에도 당의 내부든 외곽이든 거의 전업으로 활동하는 활동가부터, 모든 여가시간을 당활동에 할애하는 열성당원까지 꽤 많은 당원들이 여전히 당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무슨 비전이 있어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혹은 어떤 심리 상태로 당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지금의 진보정당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미래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보수 양당 누구도 해결하려하지 않는 남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정당은 집권가능성외에도 유권자인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한다,  국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따라, 혹은 각자가 가진 정치적 성향 배경, 이념이나 가치관에따라 각기 지지하는 정당이 다를수 있다. 정당이 득표능력의 순위로만 그 효용을 평가받는다고 하면, 큰 덩어리에서 배제된 유권자들의 목소리나 요구는 묻힐 수 밖에 없다. 주류와 덩치큰 집단은 언제든 자기 목소리를 낼 방법이 있지만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 정치적 목소리를 낼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단이 거의 없다. 거대 양당은 소수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을 뿐만아니라 소수의 목소리가 주류 지지층의 이해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수이 목소리는 배제할 수 밖에 없다.  배제되는 목소리 외에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다양한 문제들에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한국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목소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중요한 우선순위부터 정리한다면 어떻게될까. 양 정당이 부딪히고 대립하는 문제 외에도 수많은 과제가 존재한다. 그 문제의 중요성과 정치권에서 다뤄지는 비중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정치가 현실을 정확히는 스스로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면 심해질 수록,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공동화가 가속화 되면 될수록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어 날 것이다. 정치는 스스로를 주장할 수 있는 불공정한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른 사람들만의 목소리만을 대변할 것이고,  세상은 그 들 중심으로 잘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잘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은 더 늘어 갈 것이고, 그들은 소리없이 생존경쟁에서 도태되어 고독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하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바로 거대 대중정당이 만들고 있는 질서의 참 모습이다.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동물들, 수많은 생태들을 대변할 수 있는 큰 정당이 있다면 진보정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은 현재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역할, 인정받는 정도와 무관하게 담당해야할 버거운 짐을 안고 있으며, 그 짐을 진보정당이 얼마나 잘 수행할수 있는 가에 따라 한국사회의 전망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2%도 안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은 스스로 존재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는 아니다.  기성 정치권이 담아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 다수결과 민주주의는 동의어처럼 쓰인다.  5~6명만 모여도 합의되지 않는 의사결정은 다수결이 유일한 해법으로 작동한다. 


- 양당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진보정당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지금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전망을 가진 이들,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설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에 목소리를 낼수 있어야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는 있다고 본다. 


- 한국 정치에 꼭 있어야할 소수파의 목소리


좀 오래 됐지만 21년 가덕도 신공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 되었다. 민주당의원들과 국민의 힘 의원들의 카르텔이 드러난 사안이다. 반대한 국회의원 대구경북의 국민의 힘의원들과 정의당의 6명 의원들이었다 객관적으로 가덕도 신공항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성으로나 불가하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양당의 국회의원들은 표를 얻기위해 소신을 버리고 소신껏 투표했다.  지역민심을 따른다는 소신에 따른 것이다. 환경파괴나 엄청난 국가재정을 투입해야한다는 문제에대해 가장 책임있게 결정을 내려야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한 대표적 사건이었다.  민심이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진실과 책임의 입장에서 당론으로 반대표결한 정의당의 존재는 한국 정치판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남겼다. 


 24년 4월 총선, 


 이번 선거가 정의당의 생존을 가르는 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 혹은 조롱 섞인 전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정의당은 비상대책위 체제로 "선거연합정당'이라는 전술로 맞서려하고 있다.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모으로 진보진영의 반전의 돌파구를 찾기위한 노력이다.  안타깝게도 소수파들에게도 차이는 있고 합의가 물흐르듯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파들은 어떻게든 생존의 계기를 찾아 낼 것이고 반전의 시기를 꿈꾸고 준비할 것이다. 


 한국에서 소수파로 산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 "정신승리' 하는 법을 터득해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동의할 수는 없어도 인정은 해줄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부족한 사회에서 때로는 열열한 전사가 되어야할 경우도 있고, 목소리를 일부러 억눌러야할 경우도 많다. 

 언젠가 우리들이 다수파가 될 날이 올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작고 부족하지만 의미있는 희망의 씨앗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만을 바래본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독점할 수는 없다. 다수파이든 소수파이든 나름의 진실을 갖고 있고 경정해야할 가치가 있다.



정의당 김준우 비대위원장과 비상대책위원    (사진. 민중의 소리 )


작가의 이전글  마석으로 가는 날 아침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