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의 안나 D+5
5일째 아침. 오늘은 아빠와 규한의 여행 마지막 날이다. 아무래도 다 같이 사진 찍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30분짜리 스냅사진을 예약해 두었는데, 미팅 장소는 비르하켐 다리였다. 우리는 RER C선을 타고 가서 바로 내렸는데 규한에게 연락이 왔다. 도로 통제 중이라 넘어올 수가 없다는 거였다. 알고 보니 마라톤 경기 코스라서 길을 막고 있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스냅작가께 연락하니 passy 역에서 내려 걸어오면 된다고 했다. 미리 알려줘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규한에게 전달했다.
우리는 비르하켐 다리 위에서 에펠탑과 함께 사진을 찍고 강가로 내려갔다. 스냅을 찍는 외국 가족이나 커플도 많이 만났는데 보통 스팟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작가님은 네 명이 함께, 단독샷, 아빠와 나, 아빠와 규한, 우리 가족 셋, 규한과 나, 준영과 나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어 주셨다. 날씨가 더워서 30분짜리 코스를 선택한 게 잘한 일이었다. 유쾌한 촬영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파리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식사 장소는 바로 에펠타워 안에 위치한 마담 브라세리였다. 한국으로 치면 남산타워에서 밥 먹는 정도이지 않을까? 올림픽 중이라 에펠탑 안에 들어가는 것도 줄을 서 짐검사를 해야 했다. 날씨가 매우 더워지고 있었다. 내일은 33도, 월요일은 38도까지 올라간다는 말에 규한과 아빠는 오늘 한국에 가서 다행이라 말했다. 점심 예약은 12시였는데, 줄 서고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좀 빠듯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딜 가나 ’빨리‘ 행동하는 법이 없었는데 그 여유로움이 부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우리는 예약확인 후 1층까지 올라가는 에펠타워 티켓을 받았는데 (프랑스는 우리나라 1층이 0층이다.) 밥도 먹고 에펠탑도 올라가고 1석 2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니 바로 자리를 안내받았고, 파리 시티 뷰라 지금은 경기장이 된 샹드막스 공원이 보였다. 친절한 서버가 우리의 주문을 도와줬고, 나는 “français? Anglais? “라는 그의 질문에 웃으며 영어를 택했다.
전식 요리는 토마토 어쩌고와 멜론 어쩌고가 있었는데 아빠만 제외하고 모두 멜론을 골랐다. 멜론으로 만든 수프였는데 시원하고 달달했다. 식전주로는 샴페인이 제공되었고, 잔 와인도 포함된 식사였다.
메인메뉴는 4가지가 있기에 하나씩 시켰더니 닭고기, 문어다리, 리조또, 타르타르가 나왔다. 음식 맛이 깔끔하고 나쁘지 않았다. 평점을 보니 서버가 불친절했다, 맛이 별로다,라는 후기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디저트는 초콜릿 무스와 라즈베리 케이크였는데 양이 상당했다. 1인당 18만 원 정도의 식사비용에 걸맞은 뷰와 서비스, 맛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그 돈이면 철판 오마카세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지만 말이다.
밥을 먹고 내려와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을 볼 건 아니고, 아빠가 고모에게 줄 선물을 사고 싶다고 하여 찾아간 곳이었다. 야경투어 가이드가 알려준 그릇 집이었는데, 고모가 요리를 좋아하니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이곳도 구글 평점을 보니 일본인 직원이 서비스가 별로라는 평이 많아 걱정이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구매에 어려움이 생기면 어떡하지,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또한 기우였다. Astier de Villatte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인 직원이 우리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기 때문이다. 우린 아주 편안하게 그릇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아빠는 꽃이 그려진 그릇을 골랐고, 나도 함께 구경하다 시계가 그려진 그릇이 마음에 들어 가격을 봤다. 120유로. 음.. 예쁘긴 한데 17만 원짜리 그릇을 살 여유는 없어 내려놓았다. 그런데 텍스리펀까지 1유로가 부족하다는 직원의 말에 아빠는 내가 고른 것도 사주겠다고 했다. 아싸, 우리는 그릇 두 개를 사서 숙소에 짐을 찾으러 빌쥐프 역으로 갔다.
4시에 택시 픽업을 받아 공항에 도착하니 5시. 체크인하니 6시였다. 사실 나는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5일간 예약한 모든 일정과 동선을 체킹 하고, 의사소통하느라 살짝 진이 빠져있었다. “어디야?” “무슨 역에서 내려?” “몇 시에 만나?“ 당연할 수 있는 아빠와 규한과 준영의 질문세례에도 조금 질렸다. 이럴 거면 일정표는 왜 짜서 보내줬으며.. 유심은 왜 바꿔 낀 건지.. 물론 다들 파리가 낯설어서 나에게 의지하는 것임은 안다. 하지만 나도 길거리를 걸을 땐 똑같이 긴장하고, 처음 가본 곳은 새롭고 신기하다. 역시나 내 감정 챙기기가 가장 벅찬 일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아빠와 규한을 얼른(!) 마중했다. 그래도 5일간 계획한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사건사고 없이 마무리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숙소에 돌아왔다.
준영과 나의 여행도 얼마 남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저녁을 먹으러 갈 체력이 남지 않아 쉬기로 했다. 여행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