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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12. 2017

아무도 잠들 수 없는 몇 개의 밤

그러니까 어젯밤부터 너를 생각하느라 나는 잠들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젯밤부터 너를 생각하느라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물론 너에 대한 생각은 그보다 이전부터 시작되었겠지만 너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 나는 몇 번을 망설였고, 입에서 되뇌이다 결국 노트를 펴고 펜을 놀릴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시작은 네가 나에게 건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 작가님, 저예요. 선우.

  알고 있었다. 네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 전화였지만 오래 전 술자리에서 네가 나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나는 휴대폰과 번호를 바꿀 때마다, 연락을 하지 않는 이름들을 지워나갔지만 네 이름은 이상하게도 지우지 못했다. 네가 연락을 하는 건 연말과 추석 딱 두 번 뿐이었는데, 전체 메시지를 돌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곧잘 고맙다며 답신을 보냈다. 물론 너에게서 메시지가 이어져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너는 불쑥 전화를 걸어왔다. 작업실에 나와 버스를 탔을 때였다. 내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너에게 들릴까 생각했다. 너의 목소리 주변으로 나직한 음악이 깔리고 있었지만 술집 같았기에.

  - 지금 어디세요? 저 혜화왔는데.

  혜와까지는 집에서 서너 정거장. 집에 닿기 전에 내리면 그곳에 네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 H와 만났는데, 작가님 생각나서요. 이 근처 사신다고. 같이 한 잔 해요.

  너와 H가 친한 사이였던가 생각했다. 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시간에 둘이 술을 마시고 있다니. 살짝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런 불편함이 편해졌다. 너는 메시지로 지금 있는 위치를 보내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이십여 분 동안 오늘 아침의 나를 원망했다. 너무 편한 옷차림으로 나왔고, 갑자기 쌀쌀해진 저녁 기온에 작업실에서부터 걸치고 온 후디는 소매에 때가 타있었다. 벗을까 생각도 했지만 얇은 남방 차림의 모습이 더 이상하게 보일 것도 같았다. 젠장.
   
  네가 있다는 철판요리집에 도착했을 때, 너는 계속 문을 주시하고 있었던 건지 내가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손을 크게 흔들었다. 깔끔한 셔츠, 약간 풀린 타이, 왁스를 발라 살짝 넘긴 머리까지.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구겨신은 스니커즈라도 제대로 고쳐신고 들어올걸.

  - 작가님!

  너는 나에게 그렇게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고작 4살차이. 나는 정식으로 등단한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었고, 책을 출판하지도 않았다. 매체에 칼럼이나 평론을 연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고, 출간이 정해지긴 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 이쪽으로 오세요.

  너는 자리를 옮겨 옆으로 앉았지만, 나는 H의 옆에 앉았다. H는 수줍게 웃었다. 둘이 사귀는 사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를 왜 불렀지.
  요즘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고, H는 나를 부러워했다. H도 소설가 지망생이었는데 내가 선정된 문화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너는 소설이나 데뷔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심지어 과목도 국어나 문학이 아닌 한국사.
  그리고 나는 며칠 뒤에 있는 피칭 때문에 먼저 자리를 일어나야했다. 새벽 2시였다. H는 근처의 찜질방에서 잘거라고 했고, 너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H를 찜질방에 들여보내고 혼자 택시를 타고 가는 너의 모습은 다소 짐작할 수 없었다. H의 짧은 스커트, 굽이 높은 샌들에서 이어지는 가느다란 발목,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굵은 웨이브의 머리카락 그리고 웃을 때면 입을 가린 손 뒤로 보이는 치아교정기. 이상하게 매력적인 여자였다. 너와 만난다고 꽤나 신경쓰고 온 차림새였다. 두 사람의 데이트에 눈치 없이 끼어버린 것 같았지만, 나는 굳이 너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 H는 모텔에서라도 재워야지

라던가
  
  - 네 집에 데려가는 건 어때? 오피스텔 방 두 칸이라며.

라는 말들을.

  나를 먼저 택시에 태우고 손을 흔드는 너와 H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네가 H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잔을 더 하자는 말인걸까, 아니면 라면이라도 먹자는 말인걸까.
  며칠 째, 하루에 3시간도 못 잤는데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노트북을 켜 원고 창을 띄웠지만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새벽의 기운이 책상 위까지 스멀거리며 올라왔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알람인 줄 알고 끄려고 보니 너였다.

  - 잘 들어가셨죠? H 첫 차 타고 전주 내려간다고 해서 저희 지금까지 술집에 있다가 지하철 첫 차 탔어요. 이 시간에는 출근하는 사람이 반, 취한 사람이 반이네요.
  - 다음에 같이 또 한 잔해요.
  - 아직 주무시려나? 편히 주무시고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연달아 메시지가 들어왔다.
  나는 둘이 무얼했으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아직 자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너는 자주 메시지를 보내왔다. 계절의 변화, 그날의 별자리 따위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것도 한참 뒤에. 바쁜 건 사실이었지만 그날의 H와 네가 신경쓰였다.
 너는 며칠 뒤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 작가님, 이번 주말에 시간있으세요?

  H가 또 올라온다고 했다. 걘 일도 없고, 글도 안 쓰나? 나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일이 있어서 안된다고 대꾸했다. 아쉬운 듯한 너의 목소리는 나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인지, 상냥함에서 나오는 아쉬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너는 몇 번 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혜화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연극을 보러오면 꼭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주말에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며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진 속의 네 미소를 보다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깨닫곤 답신도 하지 않은 채 휴대폰을 침대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너는 연락이 없었다. 그 한동안- 나는 장편소설을 탈고 했고, 출간을 했다. 함께 지원을 받은 다른 두 명의 작가 중 하나는 드라마 판권 계약을 했고, 다른 작가 한 명은 세 달만에 5쇄를 찍는다고 했다. 그게 비해 나는 네이버에 인물검색에 나를 등록신청하는 것에 그쳤다. 내 이름을 검색하면 동명의 다른 소설가가 제일 먼저 나왔다. 그래도 문학상에 소설이 거론되기도 했고, 중고등학교과 북카페 등에서 북콘서트와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너는 천천히 내게서 물러났다.

  그런데 어제, 네가 불쑥 메시지를 보내왔다.

- 형, 잘 지내요? 꿈에 나와서 메시지 보내봐요. 어떻게 지내요?

  내 책을 읽었다던가, 다음주에 있는 북콘서트에 온다던가 하는 게 아니었다. 꿈이라니.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네 꿈에 내가 나오다니.

  그래서 나는 너에게 이 글을 쓴다.

  나는 너에 대한 감정이 다른 사람이니 우리의 거리는 이 정도가 충분하다.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주거나, 아무 것도 주지 않거나- 이 둘 중 하나도 할 수 없으니 우리의 거리는 우연한 만남 정도가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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