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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20. 2017

우리가 별의 자리를 알아가는 것처럼

있잖아, 별자리처럼 우리의 자리가 있는 걸까?

  그러니까 그녀는 여행 중이라고 했다. 베트남과 라오스를 거쳐 태국의 북부지역 치앙마이에 머무는 것이 그저 여행이라고 했다. 그 다음에 어디로 갈지, 언제 떠날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말에 덧붙여 작은 스튜디오를 빌렸다며 웃었다. 빌린 한 달 간은 스튜디오 디파짓이 아까워서라도 이곳에 머물지 않겠냐고 농을 던졌다. 밤이면 그처럼 여행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 맥주를 마시곤 했다. 길에서 파는 꼬치나 쌀국수 따위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배낭여행자에게 제격이었고, 얼음을 넣어 마시는 맥주는 이상하게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다른 배낭여행자들이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떠날 때까지 그녀는 치앙마이에 머물렀고 근교로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프리랜서 대신 디지털노마드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걸고 치앙마이에서 세 달째 머물 때였다. 함께 맥주를 마시는 얼굴들은 매번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꼭 세 가지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과 부추꼬치 그리고 싱하맥주였다. 맥주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곤 했는데, 며칠 전에 걸린 감기 때문인지 눈가까지 붉게 열꽃이 피어 있었다.


  “괜찮아요? 약은 먹었어요?”


  내 물음에 그녀는 괜찮다며 오늘따라 저녁 날씨가 좋다고 웃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면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여행을 왔다는 그녀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를 곱씹어 볼 때면 나는 스물두 살에 무엇을 했던가 아무리 떠올려보려해도 딱히 떠오를 만한 추억이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씁쓸해질 뿐이었다.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며칠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그녀가 퍽이나 귀여워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도 괜찮은 나이라고 농담을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데 그것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얼굴이 예쁘다거나 말투가 상냥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딱 스물두 살이 가지고 있는 그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쌍꺼풀이 없는 큰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할 때면 그녀의 등 뒤에서부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젊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탄력 있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몇 번씩 생각했다. 분명 내가 지나온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나는 가진 적이 없던 것 같은 묘한 풋내가 풍겨왔다. 그 풋내는 이상하게도 겨울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갓 베어낸 초목의 냄새를 닮아있었다.


  “치앙마이에 조금 더 일찍 올 걸 그랬어요.”


  그녀의 말에 왜냐고 물으니 11월 초에 있는 러이끄라통 축제 때문이라고 했다. 핑강에 가서 종이 풍등을 띄웠던 일이 생각났다. 풍등에 소원을 빌어 하늘로 날리는 데 나는 그때 이혼을 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다. 그 소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축제 봤으면 정말 좋았을 거예요. 사람들이 별을 띄워 올려 그 별들이 하늘에서 한데 모여 바람을 타고 은하수처럼 흘러가거든요.”


  나의 설명에 그녀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직 한국에 가려면 멀었는데 갑자기 한국에 가고 싶어졌어요. 은하수 같은 풍등을 못 보았기 때문일까요? 저는 한국의 겨울 별자리를 좋아하거든요. 상승기류가 적어서 구름이 많이 없는 계절이라서 겨울에 별이 더 잘 보인대요. 온통 따뜻한 태국도 좋지만 차고 맑은 겨울 공기를 좋아해요.”


라며 그녀가 웃었다. 그 웃음이 어쩐지 차고 맑은 겨울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머리 위로 오리온자리, 토끼자리, 에리다누스자리, 황소자리가 퍼져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녀에게 답장을 하는 대신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왜 이제야 전화했느냐는 남편의 물음에 나는 요즘 별자리를 올려다 보았느냐고 물었다. 뜬금없이 무슨 별자리냐는 물음에 나는 남편에게 대답했다.


  “있잖아, 별자리처럼 우리의 자리가 있는 걸까? 어느 계절이 오면 당신과 나도 그 별자리처럼 선명하게 거기에서 서로 이어져 있을 수 있는 걸까?”


  상냥한 대답이 돌아왔다.


  “굳이 계절을 따라 찾지 않아도 괜찮아. 당신에게 나는 북극성처럼 있어줄테니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렇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북극성은 사실 하나의 별이 아니라 세 개의 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에게 다른 말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그 별자리들이 선명하게 그녀의 하늘 위에 놓을 수 있도록 그녀가 찾아가는 겨울이 맑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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