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아야지 그래도...
난 어릴 때부터 정리는 젬병이었고 자고 일어나서 이불같은 걸 정리한다거나 하는 개념이 없었다. 정리같은 것만 하려고 하면 어쩐지 몸도 아프고 갑자기 피곤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중학생 때였나, 후덕한 인상에 꼼꼼한 성격인 것 같아 보이던 교감 선생님은 간혹 청소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둘러 보시곤 했는데 그 순찰 중에 내 사물함이 딱 걸렸던 기억이 난다. 교감 선생님이 열자마자 사물함 내에 나름의 질서가 무너지고 책, 학용품, 만화책이 와그르르 쏟아졌을때... 그리고 사물함을 쓰지 않는 친구 걸 쓰고 있어서 또다른 방식의 무질서를 접한 교감 선생님이 "도대체 이건 또 누구 사물함이죠?!" 라고 외쳤을때 그 또한 내 것이라서 꽤 점잖고 너그러운 편인 선생님을 기함하게 한 일....
요리, 집안일, 정리 정돈.
6년여의 주부 생활은 (1년은 시댁에 얹혀 지냈으므로 빼겠다.) 내 본성과 내가 되고 싶은 이상형 사이에 치열한 전투였다. 아직도 나는 유튜브에서 정리 정돈을 잘하는 완벽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친구 집에 가선 화장실의 깨끗함을 감탄하며 장식마저 잘 되어 있으면 찬사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게으름이 다시 슬그머니 나를 잠식해 오면 지금 당장 개어야 할 빨래를 바구니에 담아 슬그머니 방구석 어딘가에 팽개쳐 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보면 나도 언젠가 느즈막에 타샤 튜더같은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쨋든 요리라는 것도 일찍이 필요성을 못 느낀게, 미각이 별로 발달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들 다 맛없다고 하는게 맛없는지 모르겠더라. 맛집이라고 하는데도 딱히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잘 모르겠더라. 그냥 고기가 들어가면 보통 맛있는 것 같았고, 튀기거나 달달하면 맛있었다. 추운 겨울날 뜨거운 국물이면 좋고 여름엔 냉면이나 콩국수가 맛있다. 참, 여름 수박도.
그래서 한국에 살 때는 요리를 잘 안했다. 굶거나 대충 사먹거나. 대충 사먹어도 솔직히 김밥 한 줄에 국물이 있으면 꽤 푸짐하다. 간식으로 커피에 케이크나 과자를 먹으면 다른 음식 생각은 하나도 안 난다. 좋아하는 음식은 탕수육이나 치킨, 보쌈과 족발...그래, 사실 모두 배달음식이다. 야채나 과일은 몰아서 먹었다. 어쩌다가 많이 사 놓으면 썩어나가기 일쑤였기에.
게다가 난 느긋한 걸 좋아하는 집순이기 때문에 나가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너무 큰 유혹이다. 거절할 수 없다. 그래서 입맛이 배달음식에 길들여졌던 것도 같다.
스위스에서의 삶도 어느덧 7년. 그 중 가장 큰 시련은 음식에 관한 것도 있다. 물론 김치를 무조건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뭐든 끼니를 때우면 상관이 없는데- 외식을 하는 게 실질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것. 빵을 사 먹는 것도 소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그다지 대단치 않은 점심 메뉴가 한 접시에 22~25프랑 정도니 한 끼에 거창하지 않은 식사가 3만원이 넘어가니 부담스럽다. 거기에다 난 혼자입이 아니지 않은가..한 끼 식사때마다 돈을 허공에 뿌릴 수는 없으니 적성에 맞거나 말거나 흥미가 있거나 말더나 요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가 뭘 먹고 살았느냐-하면
유용한 냉동야채와 MIGROS에서 여름 그릴철에 팔던 한국 스타일 양념. 일반적인 양념에 비해 깨가 들어있는 게 특이한 점이었다. 양념은 만족할 맛은 아니나 한국 스타일을 계속 만들라는 서포트 개념으로 샀고, 냉동야채는 없으면 안된다. 냉동고에 항상 채워두고 있다.
나열해 놓고보니, 지난 시간동안 요리하기 싫어서 발악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스쳐지나 간다.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위의 사진 속 요리들은 개인적으로 성공한 것들이라는 점. 직접 요리한 뿐만 아니라 가끔은 배달 포함 식당에서 먹는 음식조차 폭망한 경우도 있었다.
어쨋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 나의 요리는 계속 될 것이다. 하다보면 이 길이 내 길이 되지 않겠는가? 가고 싶은 길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