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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 Nov 09. 2018

아, 요리하기 싫다!

먹고 살아야지 그래도...


난 어릴 때부터 정리는 젬병이었고 자고 일어나서 이불같은 걸 정리한다거나 하는 개념이 없었다. 정리같은 것만 하려고 하면 어쩐지 몸도 아프고 갑자기 피곤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중학생 때였나, 후덕한 인상에 꼼꼼한 성격인 것 같아 보이던 교감 선생님은 간혹 청소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둘러 보시곤 했는데 그 순찰 중에 내 사물함이 딱 걸렸던 기억이 난다. 교감 선생님이 열자마자 사물함 내에 나름의 질서가 무너지고 책, 학용품, 만화책이 와그르르 쏟아졌을때... 그리고 사물함을 쓰지 않는 친구 걸 쓰고 있어서 또다른 방식의 무질서를 접한 교감 선생님이 "도대체 이건 또 누구 사물함이죠?!" 라고 외쳤을때 그 또한 내 것이라서 꽤 점잖고 너그러운 편인 선생님을 기함하게 한 일....


요리, 집안일, 정리 정돈.


6년여의 주부 생활은 (1년은 시댁에 얹혀 지냈으므로 빼겠다.) 내 본성과 내가 되고 싶은 이상형 사이에 치열한 전투였다. 아직도 나는 유튜브에서 정리 정돈을 잘하는 완벽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친구 집에 가선 화장실의 깨끗함을 감탄하며 장식마저 잘 되어 있으면 찬사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게으름이 다시 슬그머니 나를 잠식해 오면 지금 당장 개어야 할 빨래를 바구니에 담아 슬그머니 방구석 어딘가에 팽개쳐 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보면 나도 언젠가 느즈막에 타샤 튜더같은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안일을 우습게 보는 자,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스스로 제대로 못하는 일을 우습게 보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엄청난 내공이 뿜어져 나오는 타샤 튜더.


어쨋든 요리라는 것도 일찍이 필요성을 못 느낀게, 미각이 별로 발달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들 다 맛없다고 하는게 맛없는지 모르겠더라. 맛집이라고 하는데도 딱히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잘 모르겠더라. 그냥 고기가 들어가면 보통 맛있는 것 같았고, 튀기거나 달달하면 맛있었다. 추운 겨울날 뜨거운 국물이면 좋고 여름엔 냉면이나 콩국수가 맛있다. 참, 여름 수박도.


마시는 건 참 좋아한다. 알코올에 약한 게 참 아쉽다.


그래서 한국에 살 때는 요리를 잘 안했다. 굶거나 대충 사먹거나. 대충 사먹어도 솔직히 김밥 한 줄에 국물이 있으면 꽤 푸짐하다. 간식으로 커피에 케이크나 과자를 먹으면 다른 음식 생각은 하나도 안 난다. 좋아하는 음식은 탕수육이나 치킨, 보쌈과 족발...그래, 사실 모두 배달음식이다. 야채나 과일은 몰아서 먹었다. 어쩌다가 많이 사 놓으면 썩어나가기 일쑤였기에. 


게다가 난 느긋한 걸 좋아하는 집순이기 때문에 나가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너무 큰 유혹이다. 거절할 수 없다. 그래서 입맛이 배달음식에 길들여졌던 것도 같다.


스위스에도 약간은 배달 문화가 있다.  절반이상은 피자인 게 함정!


스위스에서의 삶도 어느덧 7년. 그 중 가장 큰 시련은 음식에 관한 것도 있다. 물론 김치를 무조건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뭐든 끼니를 때우면 상관이 없는데- 외식을 하는 게 실질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것. 빵을 사 먹는 것도 소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그다지 대단치 않은 점심 메뉴가 한 접시에 22~25프랑 정도니 한 끼에 거창하지 않은 식사가 3만원이 넘어가니 부담스럽다. 거기에다 난 혼자입이 아니지 않은가..한 끼 식사때마다 돈을 허공에 뿌릴 수는 없으니 적성에 맞거나 말거나 흥미가 있거나 말더나 요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가 뭘 먹고 살았느냐-하면



유용한 냉동야채와 MIGROS에서 여름 그릴철에 팔던 한국 스타일 양념. 일반적인 양념에 비해 깨가 들어있는 게 특이한 점이었다. 양념은 만족할 맛은 아니나 한국 스타일을 계속 만들라는 서포트 개념으로 샀고, 냉동야채는 없으면 안된다. 냉동고에 항상 채워두고 있다.


편식 심한 닉이 펭귄들이 물고기를 낼름낼름 받아먹는 데에서 감명(?)받고 자신도 반드시 다른 게 아닌 정어리!!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스위스 온 뒤 처음으로 머리있는 생선을 구웠다
샐러드와 뢰스티, 뢰스티 위에는 라클렛 치즈. 중앙 사진 오른쪽 팬에는 스위스 소세지 세르벨라, 오른쪽 사진에는 생선과 콩 샐러드. 다들 공통점은....후딱 하기 좋다는 거다.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호떡 믹스. 사은품으로 같이 온 누르개가 참 소중하다.
이건 생일상으로 받은 파이. 보기보다 달지않고 새콤하다. 스위스 사람들은 단 음식 만큼큼이나 신 음식을 꽤 좋아한다.
시누이가 아이들 주려고 사온 고슴도치 모양 빵.
우리도 가끔 외식한다. 바덴에서 파는 수제 햄버거인데 내 인생버거이다. 그러나 양이 너무 많다. 그외 아이들이 직접 잘라먹는 야채와 소풍 먹거리, 다행히 손은 많이 가지 않는다.
남편이 만든 소고기찜. 남편은 요리하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가끔 스테이크도 썰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화가 잘 안되서 자주 하진 않는다. 
잡채는 해물 잡채를 좋아한다. 스위스인들이 의외로 잘 못 먹는 당면. 식감이 낯설어서 그렇다. 남편은 잘 먹어서 다행.
간혹 내킬때면 허브도 키운다. 그런데 맨 왼쪽은 해바라기....
애들 친구들 만나면 간식 마련하는 것도 일이다. 애들은 배고프면 쉽게 화낸다. 아... 어른들도 그렇지...
그리고 가끔 시댁에 가서 먹음으로써 한 끼라도 요리를 안 하고 지나가기.
스위스에서 아이들의 주메뉴는 감자튀김.
나름 일식이 먹고 싶어서 해본 날. 느낌이 나다가 말았다.


나열해 놓고보니, 지난 시간동안 요리하기 싫어서 발악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스쳐지나 간다.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위의 사진 속 요리들은 개인적으로 성공한 것들이라는 점. 직접 요리한 뿐만 아니라 가끔은 배달 포함 식당에서 먹는 음식조차 폭망한 경우도 있었다. 


어쨋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 나의 요리는 계속 될 것이다. 하다보면 이 길이 내 길이 되지 않겠는가? 가고 싶은 길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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